‘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이 한국어 열풍에 휩싸였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인력확보 방식이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한국어능력시험이 처음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한국어학원이 모여있다는 수도 카트만두 남쪽에 위치한 쁠쪽거리와 쁘떨리 거리. 상가밀집지역인 두 거리에는 한국어학원과 함께 ‘LG’의 가전매장과 ‘SAMSUNG’의 휴대폰 광고판이 30∼40m 간격으로 눈에 띄었다. 한국어능력시험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말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한국어학원 200여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KLC(KOREAN LANGUAGE CENTER) 또는 KLTC(KOREAN LANGUAGE TRAINING CENTER)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인 한국어학원들은 간판에 태극기까지 새겨놓고 ‘한국행’을 유혹하고 있었다.
꽤 규모가 있어보이는 한 학원을 방문했다. 다음날 오후 한국어능력시험이 치러지지만 학원 내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 학원을 운영하는 유버 라즈(28)씨는 “지난 3개월 동안 이 학원을 거쳐간 학생만 155명이며, 내일 시험에서 60% 정도가 합격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관만 한다는 조건으로 유일하게 수업 중이던 한 교실을 찾았다. 교실에는 한 네팔인 강사가 학생 3명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수업내용은 먼저 한국어시험이 치러진 몽골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문제를 칠판에 적고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칠판에 적힌 ‘안전모자’라는 단어의 뜻이 뭐죠.” 원장과의 약속을 깨고 강사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강사는 더듬더듬한 말투로 “저 한국… 말… 잘 못해…요”라며 웃었다. 원장은 곧바로 학원을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이 학원은 두 달 코스 강의료로 5천루피(한화 8만원·중산층 한 달치 월급)에 교재비 200루피를 따로 받고 있었다. 쁠쪽·쁘떨리 거리 학원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몇 년간 일하고 돌아온 현지인을 강사로 채용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급조된 학원들이 불과 2∼3개월 동안 변변한 교재 하나 없이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음날 오후 3시 카트만두 17개 학교에서 일제히 한국어능력시험이 치러졌다. 6천명을 1차로 선발하는 이번 시험에는 3만2천여명의 응시생이 몰렸다. 시험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카트만두 외곽의 리틀엔젤스 중·고등학교를 찾았다. 1천730명이 44개 교실에 나눠져 시험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어시험은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력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시험장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험장은 어두웠고, 모든 창문과 출입문을 열어놓으면서 듣기시험 때 다른 반의 카세트 플레이어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OMR 카드를 작성해본 적이 없는 네팔사람들이 답안지 표기법을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로 교체한 답안지가 수북이 쌓였으며, 응시생들은 답안지를 바꿀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표기하느라 시험시간을 허비했다.
엄격하지 못한 시험감독도 문제였다. 현지 학교 선생님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시험을 감독했지만, 수시로 고개를 돌리는 학생들의 답안지를 냉정하게 회수할 수는 없었다. 네팔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시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원칙대로만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번 시험을 총괄한 산업인력공단의 정형철 차장은 “우리와 총선시기가 비슷한 네팔 정부가 ‘총선 전에 시험을 끝내달라’고 요청해와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며 “2천 문항을 담은 교재를 한국에서 제작, 배포해 시험에 혼선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팔·카트만두= 글·사진 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