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호떡’이 있는 풍경-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5월 20일(월) 00:00
우리 마을에는 일주일에 두 번 ‘호떡 차’가 옵니다. 시내와 인접해 있기는 하지만 한적한 시골처럼 외떨어져 있는 데다 입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없는 게 더 많은 동네거든요. 물론 생활에 크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어디건 무엇이건 배달 가능한 시대이니까요) 때마다 일어나는 욕구가 다 채워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간단한 군것질거리라든가 그때그때 이용할 수 있는 가게가 몇 개쯤 더 있어도 좋겠다 싶은 거죠.

그게 통했는지 ‘호떡’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내건 트럭 한 대가 이곳을 찾아옵니다. 호떡을 굽고 어묵을 조리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개조한 푸드 트럭입니다. 선거철에 드나들던 그 시끌벅적 요란하던 것과 달리 조용하고 소박한 꾸밈새가 얼마나 반갑고 정다운지요. 붉게 밝힌 두 글자는 확성기보다 또렷하고 더 당당해 보입니다. 소리 없는 등장에도 눈에 띄는 위풍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호떡 차’의 주인은 우리에게 파격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루한 오후에 ‘별미’를 제공해줄 뿐 아니라 일상의 작은 틈에 생기를 불러다 주니까요.

일주일에 두 번, 저도 시간 맞춰 밖으로 나갑니다. 오후 서너 시, 눈은 침침 뱃속은 출출 엉덩이는 들썩들썩, 잠시 콧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할 시간입니다. 도대체 언제쯤 산책이란 걸 하게 되나 종일 그것만 바라고 있는 우리 ‘멍멍이’에게도 한계점에 다다른 때입니다. 게다가 저 ‘호떡 차’는 어떻게 제가 쉬는 날을 딱 맞춰 오는지요. 괜스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아니 나갈 수도 없습니다.

밖으로 나온 저는 먼저 아파트 후문 쪽으로 갑니다. 차가 와 있는지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죠. 왕래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있기로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정문 쪽이 낫지만, 그쪽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곳이 아닌가 봅니다. 처음엔 당연히 그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곧장 쫓겨나오고 말았다는군요. 여기는 아무에게도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 피해를 줄 가게도 없고 차들의 통행량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드문드문 산책 나온 사람들이나 몇 있을 뿐인데, 혹시 몇 개 팔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요? 지레 걱정이 앞섭니다.

‘호떡 아저씨’가 호떡을 굽고 있습니다. 다행히 손님도 두어 사람 그 앞에 서 있군요. 엊그제 비 오고 바람 많이 불던 날은, 아무도 없는 그 자리가 얼마나 횅해 보이던지요. 저는 우선 발길을 돌리려고 합니다.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느릿느릿 걷고 와도 좋겠습니다. 고흐와 고갱, 클림트와 모네의 그림들이 나란히 전시(설치)된 담장 옆을 지나,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개천을 지나, 다리 건너 한창 개업 준비 중인 ‘삼겹살과 파스타’ 가게를 지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자 합니다. 그 사이 해는 더 기울고 붉게 켜놓은 ‘호떡’의 불빛도 더 짙어져 있겠네요.

그런데요. 호떡, 하면 왠지 따스한 정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립고 그리운 추억의 한 장면처럼 말이에요. ‘호(胡)’라는 글자가 앞서 중국식이라는 걸 말해준다고는 하지만, 호호 불며 먹던 뜨겁고 달콤한 맛은 이미 우리 입맛을 사로잡아 버린 지 오래입니다. 밀가루 반죽에 설탕과 계피로 맛을 낸 그 단순한 음식은, 가난한 우리들의 ‘소울 푸드’라고 할까요.

학교 앞 포장마차에는 늘 호떡이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구수한 냄새에 도무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반질반질한 철판 위에 지글지글 노릇노릇, 그 동글납작한 것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트럭 앞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얼핏 예닐곱쯤은 되는 것 같습니다. 견공도 두엇 끼어 있습니다. 그새 온 동네에 소문이라도 난 걸까요? 공연히 기분이 좋습니다.

손님은 거의 어른들로 보입니다. 글쎄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혹시 옛날 엿장수 가위질 소리에 집안의 고물들 찾아들고 부리나케 달려나가던 그 아이들이 다시 돌아온 걸까요? 아니면 길 가다 사 먹었던 그 호떡 맛이 새삼 그리워졌을까요? 줄지어 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호떡 아저씨’의 손길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그의 표정에는 수줍은 듯 엷은 미소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굽은 듯 수그린 어깨가 조금 무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있다면 중고등학생쯤 되겠다 싶군요. 철판에서는 호떡이 노릇노릇 뜨겁게 구워지고 있습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