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시민과 역사학자
2024년 01월 11일(목) 00:00
전 세계를 통털어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을 꼽으라면 이른바 대학 강단을 장악한 역사학자들과 국사에 관심 많은 시민들 사이의 불화일 것이다. 그런 불화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가야사 문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야사 복원을 지시했을 때만 해도 이것이 역사학자들과 시민들 사이의 충돌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적폐청산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권이니 당연히 식민사관을 청산하는 방향으로 가야사가 복원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야사 복원이 가야가 고대 야마토왜(大和倭)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창하는 방향으로 드러나면서 시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문화재청에서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전북 남원을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을 왜곡해 야마토왜의 식민지 ‘기문국’으로, 경남 합천은 마찬가지로 ‘일본서기’의 이른바 임나 7국의 하나인 ‘다라국’으로 등재 신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예전에는 근·현대 부분에서 친일파를 옹호하거나 일제 식민 지배를 옹호할 경우 역사 논쟁이 벌어졌지만 최근에는 주로 고대사 분야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강원도 춘천에서 거대한 고조선 유적지를 갈아엎고 레고랜드 놀이공원 조성을 강행하면서 시민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고, ‘전라도천년사’도 시민들의 반발로 배포가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근·현대 부분의 역사 논쟁과 고대사 부분의 역사 논쟁은 다르다. 근·현대 부분은 사실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그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반면 고대사는 사실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이다. 최근까지 고대사는 물론 중세사 분야까지도 우리 국민들은 역사학자들의 전문 영역으로 인정해왔다. 대한민국에서 국사를 전공하는 교수들이 대한민국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앞에 든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런 믿음에 근본적 회의를 가진 시민들이 크게 늘어났고 새로운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중이다.

전북 남원을 고대 야마토왜의 식민지 기문국이라고 최초로 ‘왜곡’한 인물이 조선총독부와 경성제대에서 근무한 이마니시 류(今西龍)였다. 그가 1922년에 ‘일본서기’의 기문국이 전북 남원이라고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고, ‘전라도천년사’에도 그대로 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역사학계가 여전히 식민사관을 추종한다는 비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마니시 류는 1930년에 간행한 ‘신라사 연구’에서 “경주여, 경주여/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이다/ 우리 로마는 눈앞에 있구나/ 우리 심장은 고동치기 시작한다.”라고 신라 정복을 격하게 노래한 장본인이다. 이런 이마니시 류를 지금도 한국 강단사 학계는 스승으로 섬기고 있으니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병도와 함께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사를 난도질했던 신석호는 “내가 (경성제국대학) 본과(本科)때 주로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은 이마니시 류 박사라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비교적 학자적 입장에서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야사-나의 중심개념(독서신문), 1978)”라고 말했다. 이병도가 주로 보수계열의 식민사학자들을 배출했다면 신석호는 주로 진보계열의 식민사학자를 배출했다. 역사분야에만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마저 사라지고 식민사학 일색이 되는 구조가 여기에 있다.

역사학자들과 자국사를 사랑하는 시민들 사이의 화해 방법은 간단하다. 강단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의 망령에서 벗어나서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을 받아들이면 된다. 시민들이 식민사관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갑진년 새해에는 비상하는 청룡의 날개짓으로 식민사학의 망령을 타파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이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역사관이 되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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