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의 품격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3년 10월 16일(월) 00:00 가가
심란한 마음이 들 때 청소와 정리만한 좋은 소일도 없다. 결연한 각오로 신발장부터 손을 뻗었지만 정리는 커녕 막상 버릴 만한 신발 한 짝도 찾지 못했다. 함께 신고 걸어온 시간만큼이나 신발에도 인격이 생기는 모양이다. 어린이들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 이자벨 블로다르치크의 ‘세상이 보이는 신발이야기’의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 내 신발장에도 사연있는 신발들이 제법 있다.
그 중 가장 애정하는 신발은 올 봄 구두 장인의 손으로 소생시킨 조리형 여름 신발이다. 지난 12년 동안 신다가 망가진 샌들은 이제 밑창과 굽까지 말끔하게 교체되어 앞으로도 몇 년간 더 버텨 줄만큼 튼튼해졌다.
버릴 신발을 간신히 살려내 신는 기분은 남달랐다. 사실 수선비는 새 신발 한 켤레 값과 거의 맞먹었다. 수선비 청구를 받았을 때는 신발을 그냥 버릴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신발의 형태와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애쓰느라 다른 일도 못하셨다는 구두 수선 장인의 말씀과 더불어 이런 비용과 수고스러움 때문에 수선을 의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씀이 마음을 울렸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듯한 수선비를 내고도 기분이 좋았다. 뭔가 독일에 살 때 본 그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독일사람들은 의식주에 사용되는 물건들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어떻게든 고쳐가며 오래도록 썼다. 이유야 단순하다. 전쟁을 연달아 경험한 독일인에게는 생필품들이 귀한 존재다. 과거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고 수리와 수선을 해서 쓰는 것이 새 물건을 사는 것에 비해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삶의 문화가 되었다. 독일에선 자동차 번호판 뒷자리에 ‘H’가 있는 올드타이머 자동차들이 많다. 적어도 30년 이상 관리가 잘된 자동차에게만 부여되는 이 명예로운 ‘H’는 세제 혜택이란 경제적 이익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낡은 품격을 보여주는 것은 자동차뿐만이 아니다. 옛 물건을 대물려 주거나 어렵게 구해서 고쳐가며 쓰는 것이 멋있고 의미있는 일이라 여긴다. 물건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시대와 문화의 연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사용자가 더해 만들어가는 삶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계는 올해 하반기에 들어 크게 바뀌고 있다. 유난 떨지 않으며 로고를 내세우지 않는 소위 ‘조용한 럭셔리’라고 하는 ‘올드 머니(Old Money)’ 스타일이 대세가 될 모양이다. 사실 올드 머니의 사전적 정의는 ‘자수성가가 아닌 상속받은 재산’ 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패션이나 디자인에서 주목하는 ‘올드 머니’는 가문과 유산의 유무를 떠나 하나의 스타일이자 미학적인 트렌드로 우리 생활의 라이프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이 꼭 그렇지는 않지만 좋은 품질을 내세우는 물건에는 응당한 가격이 있다. 한 예를 들어 올드 머니의 대표적 브랜드로 손꼽히는 모 의류 브랜드의 옷값은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높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생산 방식을 들여다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업체는 옷감의 원자재가 되는 희귀동물의 털을 사용하기 위해 멸종위기에 몰린 그들의 야생 서식지를 늘리고 유대감을 쌓은 사람들의 빗질을 통해서만 모은 털로 원단을 직조한다고 한다.
이제 떠오른 유행에 맞춰 쉽게 구매하고 버리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가치 소비에 대한 생각이 더해지면서 지속가능한 의식주 생활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것, 오래도록 사용 가능한 것을 사려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유행은 돌고 돌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번 유행이 물질주의에 대한 과시에서 벗어나 물건의 원자재인 자원과 환경을 아끼고 품질을 위해 헌신해온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하는 데에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이 영속성을 갖는 생활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물건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달라져야 할 것이다. 가령 자신이 애정하는 물건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듬고 보살펴 가며 오래 쓰는 일이 될 수 도 있다.
버릴 신발을 간신히 살려내 신는 기분은 남달랐다. 사실 수선비는 새 신발 한 켤레 값과 거의 맞먹었다. 수선비 청구를 받았을 때는 신발을 그냥 버릴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신발의 형태와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애쓰느라 다른 일도 못하셨다는 구두 수선 장인의 말씀과 더불어 이런 비용과 수고스러움 때문에 수선을 의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씀이 마음을 울렸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계는 올해 하반기에 들어 크게 바뀌고 있다. 유난 떨지 않으며 로고를 내세우지 않는 소위 ‘조용한 럭셔리’라고 하는 ‘올드 머니(Old Money)’ 스타일이 대세가 될 모양이다. 사실 올드 머니의 사전적 정의는 ‘자수성가가 아닌 상속받은 재산’ 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패션이나 디자인에서 주목하는 ‘올드 머니’는 가문과 유산의 유무를 떠나 하나의 스타일이자 미학적인 트렌드로 우리 생활의 라이프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이 꼭 그렇지는 않지만 좋은 품질을 내세우는 물건에는 응당한 가격이 있다. 한 예를 들어 올드 머니의 대표적 브랜드로 손꼽히는 모 의류 브랜드의 옷값은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높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생산 방식을 들여다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업체는 옷감의 원자재가 되는 희귀동물의 털을 사용하기 위해 멸종위기에 몰린 그들의 야생 서식지를 늘리고 유대감을 쌓은 사람들의 빗질을 통해서만 모은 털로 원단을 직조한다고 한다.
이제 떠오른 유행에 맞춰 쉽게 구매하고 버리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가치 소비에 대한 생각이 더해지면서 지속가능한 의식주 생활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것, 오래도록 사용 가능한 것을 사려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유행은 돌고 돌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번 유행이 물질주의에 대한 과시에서 벗어나 물건의 원자재인 자원과 환경을 아끼고 품질을 위해 헌신해온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하는 데에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이 영속성을 갖는 생활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물건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달라져야 할 것이다. 가령 자신이 애정하는 물건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듬고 보살펴 가며 오래 쓰는 일이 될 수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