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광주일보가 카자흐스탄에 세운 ‘우스토베 광주한글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 김병학(55) 광주고려인마을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장이 최근 ‘2020년 기록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30~1937년 구 소련에 의해 연해주에서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으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역사가 담긴 기록물 1만2000점을 수집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공자로 선정됐다.

“카자흐스탄에서 25년을 살면서, 고려인 관련해 일하며 모은 기록들이지요. 고려인 관련 연구와 서적을 바탕으로 모은 연구 자료도 있고, 기증받은 물건이나 직접 구입한 수집품도 있어요.”

수집품은 강제이주 전 연해주에서 사용했던 생활용품(주방기구, 의복, 가구 등)부터 사진, 서적, 증명서 등 서류, 육필원고, 신문,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김 관장이 수집활동을 시작한 건 2005년께부터로, 고려인 작곡가 한 야꼬프와 책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를 함께 집필하면서다. 한 야꼬프와 김 관장은 고려인 사이에서 널리 불리는 ‘고려 아리랑’을 각각 작곡·작사했다.

“한 야꼬프씨가 반년에 걸쳐 러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고려인들의 노래를 녹취하면, 제가 가사를 우리말로 정리하는 식이었죠. 그 때 가요의 기원, 작사·작곡가, 유래 등을 공부해야 했고요. 그러면서 고려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역사에 눈을 뜨게 돼 수집을 시작했죠.”

그는 비슷한 시기 고려인 유물 수집가 최 아리따 여사를 도우면서 수집에 속도를 올리기도 했다. 김 관장은 2014년 최 여사가 작고하면서 남긴 기록과 유물도 모두 사들였다.

김 관장이 모은 수집품 중 고려인 기록물 23권은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되기도 했다. 고려인 문화예술인들이 쓴 소설·희곡·가요 등 육필원고 21권과 고려극장 80년사를 담은 사진첩 2권이다.

전남 신안군 출신인 김 관장은 대동고, 전남대를 졸업했다. 그는 1991년 광주일보 주도로 광주전남 단체장, 기업인, 개인, 학자 등이 기금을 모아 소련에 한글학교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고려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광주가 우리나라 최초로 기금을 모아 소련에 한글학교를 세웠죠. 이 때 소련 현지 고려인들이 모국어로 이야기도 하고, 음식 문화도 남아있다는 글을 읽었어요. 그들의 삶이 궁금해 직접 우스토베 광주한글학교 교사로 자원했습니다.”

1992년 27세 나이로 카자흐스탄으로 떠난 그는 25년동안 알마티대학 한국어과 강사, 고려일보 기자, 카자흐스탄한국문화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지난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5년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시집·에세이집뿐 아니라 ‘고려인 극작가 한진 전집’, ‘경천아일록 읽기’ 등 고려인 연구서와 편찬서도 출판했으며, 지금은 광주고려인마을에서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그는 “광주고려인마을은 고려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 가장 모범적인 마을”이라며 “광주 또한 고려인처럼 아픔을 겪었고, 민주·평화·인권을 지향한다. 고려인과 더불어 사는 광주에서 앞으로도 고려인을 위해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집품을 통해 고려인 역사·문화를 후세에게 알리고 싶어요. ‘강제이주당한 불쌍한 외국인 노동자’로 치부되곤 하는 고려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진짜 고려인의 삶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