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과 우리 사회
2020년 06월 09일(화) 00:00

최윤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조대신문 기자

‘n번방 사건’은 지난 2018년 하반기부터 2020년 3월까지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앱을 이용하여 ‘스폰 알바 모집’ 같은 글을 게시해 피해자들을 유인한 다음, 얼굴이 나오는 나체 사진을 받아 이를 빌미로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 즉 성 착취 사건이다. 피해자는 중학생 등 미성년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회원 규모는 최소 박사방 ‘맛보기 방’ 회원 1만 명, 박사방 유료 회원 3만 명 내지 수만 명으로 추정된다.

성 착취물을 제작·공유한 ‘n번방’의 최초 개설자 ‘갓갓’ 문형욱이 지난 5월 11일 경찰에 검거됐다.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된 지 2개월여만의 일이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가해자 전부가 20대로서 이들의 공범 또한 10대 미성년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특별한 건 결과적으로 조주빈이 아니다. 특별한 건 뭐냐? 그 무법천지의 사이버 공간이 특별한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서 금전적인 이득을 노리려면 합법적인 방법보다는 불법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게 훨씬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즉 그 안에서 활동하는 동안엔 탈규범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정확히 짚어 주고 있다. 조주빈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조주빈의 n번방’을 가능하게 한 우리 사회, 사이버 세계로 비판의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

피의자들의 나이를 보며 ‘주위 사람 중에 텔레그램 대화방과 간접적으로나마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주위에서 보면 대학이나 사내 단톡방의 성희롱은 아직도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지금도 어디에선가 저질스럽고 다른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고 갈 것이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법적 처벌은 예전보다 한층 강화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곁에는 그러한 인식이 약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나 그런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잘못된 점을 조금이라도 지적할 경우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농담인데 뭐 어때.” 우리 사회가 그랬다. 특히 사이버 세계에선 사진과 영상으로 더욱 집요하게 인권을 유린해 왔다.

‘n번방’은 결국 우리가 만든 ‘괴물’이다. 가수 정준영 등 연예인들이 저질렀던 ‘불법 촬영물 제작 및 유포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는 이런 사건과 관련된 법이 통과됐다. 바로 ‘n번방 방지법’이다. 디지털 성폭력 처벌 관련 법정형이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됐고, 불법 촬영물 구매·소지·저장 그리고 시청까지도 처벌이 가능해지는 등 여러 변화가 법에 포함됐다. 또한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한 사진·영상도 의사에 반해 유포하면 처벌될 수 있고, 촬영물을 가지고 협박·강요할 경우에도 법으로 문제 삼는 것이 가능해졌다.

안전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법과 제도가 촘촘해야 한다. 흔히 쓰는 ‘사회 안정망’의 망(網)은 ‘그물 망’자이다. 위험이나 곤란 등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조직과 시설 체계 등을 말한다. ‘n번방’ 사건을 겪은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는 일상적인 성폭력,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촘촘한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 ‘n번방 방지법’이 중요한 시발점으로 작용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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