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의 어린이 캐리커처.

독일 문학의 최고 문호인 괴테는 어린이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만일 어린아이가 처음의 느낌대로만 자라나 준다면 이 세상은 천재로 꼭 차게 될 것이다”라고. 어른의 시각으로 어린아이의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여기 시골의 작은 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모두 11명인 시골학교다. 2019년 1학년에 입학한 11명 가운데 2명 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그 가운데 6명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다.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평소 ‘노는 것이 공부’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 반은 ‘틀려도 괜찮은 반’, ‘씨앗반’으로 불린다. 자연히 선생님은 ‘씨앗 선생님’으로 불린다.

바로 광양 동 초등학교 김영숙 교사와 1학년 1반 11명의 어린이들. 김 교사는 지난 1년, 여덟 살 아이들이 쓴 시를 모아 동시집 ‘나랑 자고 가요’를 발간했다.

책을 펴낸 곳은 순천 동네책방으로 유명한 ‘심다’. ‘작은 책방’, ‘독립출판사’,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이번 동시집은 밝고 환한 이미지를 준다. 어린 시절에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문을 연 ‘심다’는 출판사를 겸하고 있는 작은 책방이다. 그동안 이곳은 지역민을 위한 독서모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알차게 진행해 왔다. 이번 동시집 발간으로 지역민들의 문화활동이 더더욱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어린 시절에만 볼 수 있고 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세상이 있습니다. 자라면서 그 세상은 희미해지고 잊혀 가고 더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어린이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담아 두고 싶었어요.”

김 교사가 아이들과 묶어낸 작품집에는 고구마 캔 이야기, 비 맞은 이야기, 도토리를 줍거나 낙엽을 밟은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일상적으로 지나칠 수 있는 풍경과 사물이 아이들의 눈에는 의미 있는 소재가 된다. 11명의 시인은 이준상, 서지현, 강태진, 김소이, 박종호, 조서현, 남희원, 유세민, 유은아, 배찬옹, 윤유진 어린이다.

“우리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 할머니랑 엄마가/ 감나무 팔을 꺾어도/ 감나무가 살아남았다./ 나무는 대단해.”(이준상 ‘감나무’)

“지우개는 아프겠다./ 눈, 코, 입 다 아프겠다./ 연필위에 달린/ 지우개는 더 아프겠다.// 근데 옷은 왜 안 입고 있을까?”(윤유진 ‘지우개는 아프겠다’)

그렇다면 김 교사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시 지도를 했을까. “한 학기 동안 놀았다”는 말에 일말의 교육 철학이 투영돼 있다. 다문화 아이들 가운데는 집에 가면 한글을 사용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김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 환경과 익숙해지게끔 유도를 했다. “처음에는 받침 없이 쓸 수 있는 말을 쓰거나 읽을 수 있게” 가르쳤다. 그러다 “시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연습하게 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김 교사는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다가 “그 말을 그대로 옮기면 시가 된다”고 일러주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바로 일상에서 접하는 ‘말’이 곧 ‘글’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시집이 발간되자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반 친구들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면서도 감격스러워 했죠.”

김 교사는 “하루 내내 읽었다는 아이도 있었고, 밤에 잠 잘 때 배개 밑에 놓고 자는 아이도 있었다”며 “우리 어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두껍게 벽을 치는데, 그 벽을 허물고 마음을 녹여주는 게 아이들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숙 교사.

김 교사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계획이다. 아쉽게도 올해 광양의 마로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지난해 1학년 아이들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새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글 쓰기, 시 쓰기와 같은 활동을 계속 할 계획이다.

곽재구 시인은 추천사에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 안에 아름다움 가득한 신비한 꽃밭을 지니고 있다는 것 때문에 행복했고 이 아이들의 뒤에서 꽃밭에 물을 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며 “한국의 시인들이 이 시집을 꼭 보았으면 싶다”고 평했다.

한편 이번에 펴낸 동시집 수익금은 전액 아이들 전체 이름으로 초록어린이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