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을 보는 듯한 광주 상무소각장의 거대한 크레인 집게.

오스트리아 빈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세계적인 미술가 훈데르트 바서가 참여한 ‘거대한 예술품’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세계적인 미술가 훈데르트 바서가 참여한 ‘거대한 예술품’이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지난 2017년 ‘문화비축기지’로 변신했다. 유류 저장 탱크 원형을 보존하고, 옹벽 등 옛 공간을 그대로 살린 비축기지 곳곳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풍겨 흥미로웠다.

지난 8월말 찾았을 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전시가 한창이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다음날 있을 패션쇼 준비로 바쁜 모습이었다.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커뮤니티센터 카페테리아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로 가득찼고 다채로운 책 등이 구비된 2층에서는 모델을 앞에 두고 드로잉 행사가 펼쳐졌다.

석유비축기지는 1973년 석유 파동 이후 건설됐다. 서울 시민이 한달간 쓸 수 있는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하던 이곳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다. 이후 10년 넘게 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다 지난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문화비축기지로의 변신을 결정했다. 높이 15m, 지름 15~38m 규모의 5개 유류보관 탱크는 공연장과 전시공간 등으로 탈바꿈했고 기존 탱크에서 해체한 내외장재를 재활용해 신축한 공간은 카페테리아, 강의실 등이 어우러진 커뮤니티 센터로 조성했다.

지난 28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상무소각장 시설을 둘러봤다. 지난 16일 열린 ‘상무굴뚝축제’를 위해 쓰레기반입장이었던 곳을 부분 개방한 적은 있지만 폐쇄후 공장동 전체를 언론에 오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9월 가동을 시작해 지난 2016년 완전 폐쇄된 후 활용방안을 놓고 우여곡절을 겪었던 상무소각장은 광주시가 공청회 등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키로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변신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2019 유휴공간 문화재생 연구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돼 기본계획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문가 그룹, 시민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도 받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다.

헬스장·수영장으로 활용중인 소각장 내 복지동과 녹지공간 등 1만 200㎡(약 3000평)에는 광주 대표도서관을 짓기로 하고 현재 17억원 규모의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진행중이다. 도서관은 총 건축비 392억원(땅값 포함 495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하 4층 규모로 설립될 예정이며 설계 공모 개시 3일만에 전 세계에서 257건이 접수되는 등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곳은 소각시설과 굴뚝을 포함한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1만 1258㎡)의 공장동이다. 시는 올 초부터 인문학자, 건축가, 시민 등이 참여하는 워킹그룹을 운영, 논의를 전개하고 소각장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부천아트벙커B39’ 등을 견학하는 등 현장 탐방도 진행해왔다.

공장동에 들어서 안내자와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어 전등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데다 공간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안내자의 불빛을 따라 움직였다. 일단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규모가 커 웅장한 느낌이 전해졌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장 먼저 만난 쓰레기 반입장은 4층 높이의 탁 트인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쓰레기를 실은 차량들이 속속 모여드는 곳이니 공간 자체가 넓을 수밖에 없다. 최근 열렸던 굴뚝 축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반입장은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에 더 없이 효과적인 공간처럼 보였다. 화력발전소를 재활용한 테이트모던 미술관이나 노키아 케이블 공장을 리모델링한 헬싱키 문화시설 ‘카펠리’처럼 높은 층고의 널찍한 공간은 설치미술 등 다양한 실험 등이 가능한 곳이어서 어느 장소보다 활용도가 높아보였다.

중앙제어실도 흥미로웠다. 소각로와 쓰레기 투입구 등 각 공간들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모니터와 구조를 그려놓은 그림판 등이 눈길을 끌었고 업무일지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대형 크레인 집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보였다. 쓰레기 더미를 끌어올렸을 집게는 낡고 녹슬어 있었지만 소각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5층에서 내려다본, 쓰레기가 떨어지는 공간들은 ‘깊이’를 잘 활용하면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였다. 각종 시설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계실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야할 것으로 보였다. 각종 장비와 철판 등이 공간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구조물을 모두 살릴 경우 공간 활용 과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무 소각장의 상징과 같은 82.5m 높이의 굴뚝은 외관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광주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역사를 간직한 예술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 시내 중심에 자리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연간 50~6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다. 1971년 건립됐다 1987년 화재로 이전 등이 논의됐지만 물류 비용과 재건 비용 등의 이유로 같은 장소에 재건축이 결정됐다. 주민을 설득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이옥신 방지 등 환경문제 해결과 소각장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제안이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인 훈테르트 바서가 참여해 1992년 문을 다시 연 소각장은 바서 특유의 동화같은 이미지들이 소각장 전체를 감싸안으며 장관을 연출한다. 시내 곳곳에서 훈데르트 바서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린 후, 지하철 역사 2층과 바로 연결된 소각장에 도착하면 눈앞에 거대한 ‘예술품’이 펼쳐진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물 디자인을 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광주 대표 도서관은 오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장동 리모델링은 전체를 모두 마무리할 경우 사업기간 등이 길어짐을 감안, 부분 개방 방침을 정했다. 우선 도서관 완공시점과 같은 시기에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복안이다. 소각장 옆 바로 공터 역시 문화시설 지구로 지정돼 있어 도서관, 소각장 복합문화공간 등이 어우러지면 향후 광주를 대표하는 근사한 ‘문화벨트’로 자리매김할 듯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