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는 인간의 우여곡절한 삶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을 만들고, 주제에 따라 확산하여 적용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이 제각기 다르다’ 또는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처럼 말이다.

개인이나 가정의 불행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 원인을 전혀 예견하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발생하는 경우와 개인이 실행한 어떤 행위가 가혹한 결과로 나타난 사례를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지난달 진해 해군기지에서 열린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식에서 최종근 하사가 숨졌다. 청해부대는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우리에게 생생한 부대이다. 삼호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었을 때 피해자 한 명 없이 구출한 영예를 가지고 있다.

이역만리 아덴만에서도, 파고를 넘나드는 긴긴 항해에서도 무사했던 그가 정박용 밧줄에 맞아 순직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고요하고 날씨는 좋았다. 6개월 임무를 마치고 그의 군 생활도 마무리 정박 단계였다. 자랑스러운 자식을, 든든한 오빠를 맞이하러 갔다. 가족 모두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만남의 기쁨만 남았다. 그런데 이 만남의 순간이 이별의 순간으로 바꿨다. 가족 품에 안긴 대신 구급차에 실려 갔다. 제대를 하고 돛을 올려 인생의 항해를 시작할 청년이 이렇게 삶의 닻을 내렸다. 흔히들 운명이라고 하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환영식이 장례식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아버지, 저 한국에 돌아가면 아버지하고 소주 한잔 하고 싶습니다” 소주 한잔, 아버지는 다 컸다고, 어른스러워지고 의젓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모든 아버지들은 이 소주 한잔의 대견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잔은 부딪치지 못했고, 영정 앞에 올려졌다.

최종근 하사의 여동생은 “오빠 이거 거짓말이라고 하면 안 되냐”고 추모 글을 올리면서 “제발 기적처럼 사는 사람들처럼 오빠가 그 기적이 되면 안 되냐”고 몸부림쳤다. 이 상황이 제발 현실이 아니기를, 이 순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절박한 경험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다. 최하사 가족의 절망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야구 중계방송을 보면서 역전을 간절히 바라거나, 계속 끌려가다가 극적으로 뒤집는 경기를 두고 많이들 하는 말이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

지난달 26일 키움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삼성이 3-2로 지고 있었다. 9회 말 투 아웃까지 끌려가다가 두 명의 주자가 어렵게 출루했다. 그 순간 대타로 박한이 선수가 나왔다. 40세 리그 최고령 선수다. 박한이는 19년 동안 삼성팀 한 곳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기에 ‘푸른 한이’란 애칭이 있고, FA계약도 싸게 하여 ‘착한이’라고 했다. 담장까지 날아간 운명의 초구는 3-4 역전의 공이었다. 박한이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 포효했다.

그날 밤 지인들과 나눈 술, 환호, 자존, 기쁨은 흥건했지만 다음날 오전 8시 6분 음주 운전으로 끝내기 안타는 끝내기 야구 인생이 되었다. 108개의 실밥으로 묶은 140g 야구공을 두고 그는 배트를 내려놓았다. 한국시리즈 신기록 6개, 우승 반지 7개, 영구 결번과 지도자의 길이 멈췄다.

그의 회한은 얼마나 깊고 자신을 옥죄는 자책은 얼마나 무거울까. 야구를 보면서 내 스스로 박한이가 되어 딱 한번만 되돌릴 수 있으면 어떨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서 날마다 함께 생활하는 학생과 교직원이 500여 명이다. 학생들은 비슷한 복장으로 등교를 하고, 교직원들은 교육이란 단일 목적으로 출근하기에 겉으로는 별다른 차이 없이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은 500여 가지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등교하고 출근한다. 지난 밤 즐거웠던 학생도 있고, 민원에 시달린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등굣길 학생과 출근길 선생님을 보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하지만 갈수록 훈화 또는 조언이란 미명으로 선뜻 말하기가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