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닉 혼비의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는 열렬한 팬덤에 대한 보고서다. 열한 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하이버리에 갔다가 축구에 매혹된 그는 그야말로 축구의, 축구에 의한, 축구를 위한 삶을 산다. 데이트보다 축구가 우선이며, 경기가 있는 날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해 아침부터 경기장에 가고, 결국 홈구장 근처로 이사까지 했다. 심지어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아스날 팀의 역대 선수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결혼해서는 부부 싸움 중에도 멋진 골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그가 응원하는 아스널의 성적은 늘 참담했다.

소설가 박민규의 야구 사랑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낙오자들에게 슬프고도 유쾌한 연가를 띄운다. ‘삼미’는 늘 패배만 하고 살아온 우리 시대의 자화상과 닮았으며, 자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야구는 바로 그들의 것이라 단언한다.

하위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많은 시간이 고통스럽다. 경기가 멋지게 술술 풀리는 경우는 드물고 승리의 기쁨보다 패배의 아쉬움이 많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얻은 절망. 팬들은 좌절감에 선수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연봉을 얼마 받는다고? 그 돈은 너를 봐 주는 값으로 내가 받아야겠다.” 그러나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두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곳이 경기장이다. 천지가 뒤집히는 듯 엄청난 희열과 카타르시스, 눈물, 감동과 함께 팬들은 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

닉 혼비는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를 보유한 팀도 나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나는 약한 상대마저 어렵게 이기는 그저 그런 팀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것은 고통으로서의 오락이고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다.” 지난 10년간 ‘보살’이라는 말을 들었던 한화 팬들의 심정도 이랬을까.

2019 프로 야구 시즌이 시작됐다. 겨우내 기다렸던 팬들의 기대와 달리 KIA 타이거즈는 극심한 타격 부진 속에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KBO 역대 최다인 열한 번의 우승 감격을 맛본 팬들에게 ‘고통으로서의 오락’ 체험은 너무 가혹하다.

/유제관 편집1부장·부국장 jk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