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민 영웅 박항서 감독은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14일 기자회견에서 "선수들과 같이 생활할 때가 가장 즐겁다. 제 지도자 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국내 지도자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경남FC에서 감독 생활은 곡절과 부침의 연속이었다.

　박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다. 같은 해 박 감독은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을 맡아 지도자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4강전에서 이란에 패배해 국민적인 비난을 받았다. 당시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냈음에도 그는 지휘봉을 놓아야 했다. 우승하지 못한 ‘죄’로 감독 데뷔 3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박 감독은 2005년 경남FC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해 재기에 성공한다. 2007년 팀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렸다. ‘박항서 매직’이란 수식어가 처음 생겨난 것도 이즈음이었다. 순탄할 것 같은 지도자 인생에 또한번 좌절이 찾아왔다. 구단 관계자와 알력을 빚다 9개월여 남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박 감독은 같은 해 12월 27일 허정무 감독의 뒤를 이어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부상병동’으로 불리던 팀을 재건해 2008 삼성하우젠컵 대회에서 수원 삼성과 맞붙어 패배했지만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박 감독은 2009년 2월 ‘풍운아’였던 이천수를 영입하면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다. 선수재능을 아끼는 그의 성품 탓이었다. 당시 이천수는 훈련 불참 등 수원 삼성 코치진과 마찰을 빚고 있던 상태였다. 이천수는 박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연봉을 구단에 ‘백지 위임’하며 전남 드래곤즈 멤버가 됐다.

　하지만 이천수는 K리그 개막전에서 심판 판정에 반발해 ‘주먹감자 세리머니’를 하는 등 돌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박 감독도 선수 관리 책임을 지고 100만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이천수는 이후에도 계약 문제로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거나, 코치진과 마찰로 팀을 이탈하는 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박 감독은 ‘이천수 이적 파동’, 주전 부상 등의 악조건을 딛고 팀을 2009년 정규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이후 전남은 3위 FC 서울을 꺾고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성남 일화를 만나 고배를 마셨다. 이듬해 전남 드래곤즈는 8승8무12패(승점32)로 10위에 머물렀다.

　결국, 박 감독은 2010년 11월 5일 계약 기간 1년여를 남기고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서 물러났다. 이후 7여년간 상주 상무 감독, 내셔널리그 소속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 등을 전전했다.

　축구계에서는 박 감독의 곡절많은 지도자 경험이 ‘박항서 매직’의 자양분이 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프로 축구계의 한 인사는 “박 감독의 좌절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며 “지도자로서 뼈아픈 경험이 베트남 대표팀을 이끄는 직·간접적인 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