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는 일제 강점기 고리대금업자인 윤직원 일가를 통해 시대 의식을 묻는 작품이다. 윤직원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자기 집안만 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향교의 우두머리인 ‘직원’ 자리를 돈으로 산 데다 족보까지 바꿔 신분 세탁을 했다. 마지막 바람은 두 손자가 군수와 경찰서장이 되는 것인데 그러나 첫 손자는 주색잡기로 재산을 탕진하고 둘째 손자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체포된다.

윤직원에게 ‘태평천하’의 의미는 집안의 안녕과 물질적인 풍요다. 이를 위해서는 일제 식민 지배가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에게 독립이나 민족 문제 같은 공동체 의식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광주형 일자리가 난항을 겪으면서 물거품이 되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여당 내부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 추진하자는 제3대안론까지 나왔다. 모든 세상사에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특히 ‘골든타임’은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간이나 재난으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말한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북한 병사를 살려 낸 이국종 교수는 ‘골든아워’라는 책에서 중증외상센터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너무 많은 사람이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길에서 죽어 나간다”며 “외상외과 환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며, 정책의 스포트라이트는 없는 자들을 비추지 않으므로 그 불빛은 외상외과에 닿지 않는다”고 통탄했다.

광주형 일자리의 골든타임이 목전에 닥쳤다. 조만간 성패가 판가름 나겠지만 협상의 최대 쟁점이 돈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국종 교수가 그렇게 강조했던 중증외상센터도 결국 예산 문제로 번번이 좌초됐었다.

다시 소설 ‘태평천하’로 돌아가자면, 윤직원은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고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라고 말했다. 누군가 태평천하를 누리는 사이, 누군가는 ‘지옥천하’를 견뎌야 한다. 그러는 사이 골든타임은 공멸(共滅)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만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