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누구 아닌가~?” “이~. 나 누구네이.” “아따, 이것이 얼마 만이당가? 잘 살었능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다소 상기되고 과장된 말투 속에 반가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엊그제 만난 친구도 있었고,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었고, 심지어는 근 40년 만에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다. 하도 오래 되고, 하도 많이 변해서 얼른 알아보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고향 떠나 객지 생활하느라 말투가 바뀐 친구도 있었고, 지나온 삶이 고달팠는지 유독 주름살이 많이 잡힌 친구도 있었다. 공직에 나가 나랏일 보는 친구도 있었고, 크게 사업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만그만하게 사는 친구도 많았다. 이런 저런 친구들이 모였지만, 어색함은 잠깐일 뿐 금방 아무렇지 않게 버무려졌다.

최근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장흥 용산초등학교 제51회 졸업생이 한 자리에 모였다. 38년 전 졸업한 130여 명 중 50명 가까운 친구들이 모였다. 장소는 모교(母校)와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은 문을 닫은 학교를 리모델링해 체험 학교로 꾸며놓은 곳이다. 모교 가깝고, 숙식 제공이 가능하니 동창회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공도 차고, 술잔 기울이며 어릴 적 기억과 지나온 삶을 더듬으면서 회포도 풀었다. 동창회 발전을 위한 진지한 얘기도 나눴다. 함께 교가를 부를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튿날 일요일 아침, 밤새 전투 치르느라 쓰린 속을 해장국으로 다스리고 모교로 이동했다. 많이 달라졌다. 교문도 달라졌고, 교사(校舍)도 달라졌다. 교장 선생님 관사 자리에는 주차장이 생겼고, 대각선 맞은편 운동장 끝 팽나무 뒤로는 멀리 부용산을 배경으로 새로 건물이 들어섰다. 다행히 교목 히말라야시다는 여전히 그 기상을 뽐내고 있었고,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이순신 장군 동상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넓던 운동장이 좁아 보였다. 운동장보다 더 초라해진 건 학생 수였다. 우리 때는 한 학년에 세 반, 한 반에 4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전 학년 합쳐서 50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것도 면 내 세 개 초등학교가 합쳐졌는데도 말이다. 이러다 머지않아 문을 닫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됐다. 나오는 길에 안내를 맡아준 행정실 선생님께 미리 준비한 정성도 건넸다.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후배들 꿈을 키우는데 보태 쓰시라는 말과 함께.

내친 김에 용산중학교에도 들렀다. 원체 시골이다 보니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가 따로 없다. 중학교라고 해서 초등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애잔했다.

학교를 나와 장터로 향했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용산장은 1일과 6일에 열린다. 장터도 많이 쪼그라들었다. 학교 파하고 장터에 들러 사먹었던 ‘덴뿌라’ 맛은 새로운 세상이었는데. 시끌벅적했던 장이 이제는 겨우 시늉만 남아 있었다. 덴뿌라 가게도 튀밥 튀던 아저씨도 온데간데없었다. 부침개 가게 앞에 판을 펴고 막걸리로 거나하게 뒷풀이를 했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장터에 활기가 돈다는 말이 들렸다. 장터는 늘 그래야 하는 것인데.

“조심해서 잘 가소~이.” “그래. 반가웠네~이. 내년에 또 보세~이.”

1박2일 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제각각 삶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늘 그렇듯 만날 때 반가움보다 헤어질 때 아쉬움이 더 큰 법이다. 또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한 채 갈 길이 멀어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고향에 사는 친구들이 객지 친구들을 배웅하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부용산이 높이 솟아 근원이 됨에/ 여윗냇물 맑게 흘러 열린 벌판에/ 성스럽게 터를 닦는 우리 용산교/ 자손만대 이 강산에 길이 빛내세”

서울로 돌아오는 길, 전날 밤 동무들과 함께 불렀던 교가가 귓가에 쟁쟁 거렸다. ‘모교는 평생의 자랑이요 동창은 평생의 길동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하다. 고향에서의 1박2일은 더 그랬다.

자랑스런 용산초등학교 제51회 친구들! 모두 잘 지내다 내년에 또 보세. 그리고 내년 동창회도 우리 고향 장흥 용산에서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