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賂物)과 선물(膳物) 사이
2018년 06월 25일(월) 00:00

[김상훈 변호사]

필자는 매주 월요일 아침 10여 명의 변호사들과 함께 판례를 공부한다. 텍스트는 대법원이 매월 2회 주요 판결을 모아 발행하는 판례 공보인데, 되도록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도 2017도12346 판결을 공부하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고민해 보았다.

뇌물 관련자 A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모두 합격한 검사장급 검사이고, B는 ‘바람의 나라’ 등 게임을 히트시킨 벤처 기업인이다.

둘은 고등학교 시절인 1985년 처음 만나 대학생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왔고, 문제가 된 2005년 경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해 왔다. A는 2004년 10월∼2007년 3월까지 검찰 인사권과 예산권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에, 2009년 8월∼2010년 8월경까지 전국 기업, 증권 범죄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으로 근무했다.

2005년 이후 B 또는 B가 설립한 게임 회사는 5건의 형사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모두 ‘공소권 없음’ 또는 ‘혐의 없음’으로 처리됐지만, 향후 형사 사건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아지는 시기였다.

잘 나가는 기업인 B가 잘 나가는 검사인 친구 A에게 베푼 호의는 다음과 같다.

①2005년 6월경 넥슨 1만주 양수 기회 제공, ② 2005년 10월경 주식 인수 대금 4억2500만 원 ③ 2006년 11월경 넥슨 재팬 신주 8537주 인수 ④2008년 2월경 제네시스 무상 사용 ⑤ 2009년 3월경 위 제네시스 차량 처남 명의 등록비 3000만 원 ⑥ 2007년 10월∼2014년 12월경까지 8회에 걸쳐 해외여행 경비 4700여만 원 등이다. B의 호의를 받은 A는 2015년 넥슨 재팬 주식을 매각해 129억 원의 차익을 거두었다. 기록에는 B가 A에 쏟은 위 호의의 이유를 ‘자신과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형사 사건 등 분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검사인 A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증거 조사돼 있다.

기업인의 검사에 대한 일방적 호의(好意), 이에 대한 법적 평가는 어떨까?

우선 넥슨 1만주 양수 기회 및 넥슨재팬 신주 인수에 관해서는 양도인과 A를 연결해 준 것에 불과하고, A가 주주 지위에서 취득한 기회일 뿐 별도의 재산상 이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현재까지 환송심을 포함해 4개 판결의 일치된 결론이다. 당시 하늘의 별따기처럼 구하기 어려운 넥슨 주식 취득 기회를 주고, 대박이 예상되는 넥슨 재팬 주식 교환 기회를 부여해 실제로 9년여 만에 1600% 이상 수익률을 현실화한 것이 재산상 이익이 될 수 없다고 하니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만, 주식의 역동성, 가치 예측의 어려움 등을 십분 감안해 일단 넘어가자.

넥슨 재팬 매각 차익 129억 원의 토대가 된 넥슨 주식 인수 대금 4억2500만 원, 1년여간 고급 승용차 무상 사용, 그 후 인척 명의로 등록받기 위한 등록비 3000만 원, 7~8년간 해외여행 경비 4700여만 원 등은 어떨까? 대법원 파기에 의한 환송심의 결론은, A가 받은 돈과 A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이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B는 A에게 잘 보이면 그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손해를 입을 염려가 없다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감에서 이익을 공여한 것에 불과해 직무 관련성도 대가성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 매각 차익 129억 원은 제외하더라도, 5억 원이 넘는 현금, 차량 제공, 해외여행 경비 직접적 대납에도 대가성이 없을까? 필자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뇌물죄에서 직무란 공무원이 그 지위에 수반해 공무로서 처리하는 일체의 직무를 말하며, 과거에 담당했거나 또는 장래 담당할 직무 및 사무 분장에 따라 현실적으로 담당하지 않는 직무라고 하더라도 법령상 일반적인 직무 권한에 속하는 직무 등 공무원이 그 직위에 따라 공무로 담당할 일체의 직무(2013도10011 판결)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검찰국, 서울중앙 금융조세조사부를 맡고 있던 A에 대해 B가 제공한 보험용 기회 및 금품 제공이야말로, 뇌물죄의 그것이라 할 것이다.

필자 생각에, 주는 편에서 사후에 그 상당의 교환 가치를 반환받을 생각이 없어야 하고, 받는 편에서 받을지 말지를 망설일 정도의 가치를 넘지 않아야 비로소 선물의 영역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부정청탁 금지법이 선물을 제도로써 금지시키는 과잉 설계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기업인의 검사에 대한 뇌물을 선물로 사면시켜 준 판결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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