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000年 인물열전] <9> 신안 김환기 화백Ⅱ
2018년 03월 28일(수) 00:00
예술섬 안좌도 ‘김환기’를 그리다

2017년 김환기 아트페스티벌이 개최될 당시의 안좌도 풍경. 마을 창고 담벼락에 김환기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벽화가 시선을 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신안의 바다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대개의 세상 이치가, 사람살이가 양면성을 지닌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올망졸망한 섬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풍경을 거느린 반면, 한편으론 갑작스러운 해양 사고가 발생하는 어두운 이미지도 담고 있다. 잠잠하고 평온한 바다는 여느 수묵화에 비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폭풍이 치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리면, 그때의 바다는 무섭고도 가혹한 실체로 다가온다.

화창한 봄날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 신안의 안좌도에서 바다의 이중성을 떠올리는 건 얼마 전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흑산도 인근에서 일어났던 여객선 좌초 사고는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화가에게 바다는 본질적으로 모든 예술의 원천이며 생명이며 본향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수화(樹話) 김환기에게 신안의 바다는 앞서의 수다한 모든 풍경을 배면에 드리운 신비적이면서도 신화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고택에서 바다와 예술과 신화를 생각한다. 봄을 맞아 생가 앞 소담한 정원에 푸른빛이 감돌아 생기가 넘친다. 유년의 김환기에게 이곳의 풍경은 화인처럼 뇌리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고향의 앞바다, 고향의 모교, 고향의 산천이 수화에게 선물했을 예술의 영감은 깊고도 넓다.

김환기 고택은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51호로 승격 지정돼 있다. 신안에서 개인 가옥 가운데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김환기의 가옥이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국가기념물지정(2007.10.12) 당시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로 우리나라 전통미를 현대화시키는 데 주력한 수화 김환기화백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안채와 화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환기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제1세대 화가로 한국의 고전적 소재를 추상적 조형언어로 양식화하여 한국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로, 이곳은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 작품 활동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라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전통가옥이 근대로 들어서면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으로 변용되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 김환기를 키웠던 고향이 그를 기린다. 그는 안좌도와 신안과 남도의 브랜드가 됐다. 아니 ‘신화’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그를 모티브로 하는 공간과 조형물이 생겨났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김환기를 선양하는 사업이 고향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신안이 배출한 세계적인 화가이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고향인 신안이나 목포에서조차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생활한데다, 말년에는 외국에서 창작활동을 펼쳤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던 탓이었다.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에 대한 추모사업이 먼저 시작된 곳은 외국이었다. 1979년, 정확히는 수화의 사후 5년 만에 미국 뉴욕에 환기재단이 설립됐다. 서울에서는 그보다 10년 뒤 재단이 생겼으며 환기 미술관은 1992년 서울에 환기미술관이 건립됐다.

수화를 낳고 기른 신안에서도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2006년 신안군 주최, 전남민예총 주관으로 안좌도에서 ‘떠도는 미술관’을 운영했다. ‘찾아가는 예술여행-김환기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지역예술가, 지역주민, 학생 등이 참여했으며 생가 활용방안 워크숍 등을 개최했다.

이어 2008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 서울 분관에서 ‘제1회 김환기국제미술제전’이 열렸다. 8명의 큐레이터와 국내외 작가 49명이 신안 현장을 방문해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서울과 광주에서 차례로 결과 전시를 개최했다.

2015년부터는 김환기 아트페스티벌이 열렸다. ‘안좌도 랩소디’라는 주제로 목포종합예술갤러리에서 열린 페스티벌에서는 국내외 작가 레지던지 프로그램 운영, 학생 대상 예술교육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지난 2017년에는 생가와 창작공방, 독일, 서울 등지에서 미술제전이 열렸다. 베를린 해외전시, 국내외 참여작가 안좌도 작품할동, 서울 C&J 갤러리와 조선대미술관에서의 결과물 발표전 등이 펼쳐졌다.

이렇듯 김환기 아트페스티벌은 김환기를 신안이 배출한 세계적인 화가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 그로 인해 안좌도는 예술의 섬을 넘어 ‘김환기의 섬’으로 바뀌었다. 섬 곳곳이 수화의 그림과 그림을 모티브로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특정 공간에 설치된 조형물은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을의 양곡창고, 골목의 담벼락이 김환기의 작품으로 특유의 향기를 발한다. 향후 읍동리 일원에 김환기미술관이 완공되면 이곳은 남도의 문화명소로 거듭날 전망이다.

‘사람은 떠나도 예술은 남는다’는 고전적인 명제와 가장 부합하는 곳이 이곳 안좌도요, 신안이다. “섬, 바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명징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수화 김환기에 대한 선양사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질 것이다. 누구든 신안 안좌도에 가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예술혼을 그렇게 만날 수 있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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