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아직도 일부에선 구정(舊正)이라 부르는 음력설이 지났다. 설 연휴엔 많은 사람이 지인들에게 1월1일 신정(新正)에 이어 새해 인사를 한다. 두 번 새 해를 맞는 것이다.

설은 그동안 부침(浮沈)의 역사를 겪었다. 고종이 1896년 1월1일 태양력을 공식 역법으로 채용하면서 설은 폐지됐다. 하지만 관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백 년 이어온 전통이 어찌 한순간에 사라지겠는가. 왕실조차도 음력설에 각종 행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제는 신정 때 관공서와 기업은 쉬도록 하고 학교에는 10일가량의 방학을 주는 반면 구정엔 일부러 조업을 강요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빠지지 못하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등 구정 압살 정책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음력설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일제는 강제적으로 방앗간의 조업을 금지해 상차림에 필요한 떡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설빔을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구정은 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푸대접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공휴일을 지정하면서 음력설을 빼는 대신 신정에는 3일간 쉬도록 했다. 박정희 정권도 극장 광고물에 ‘구정 프로’라는 문구를 넣을 수 없도록 하고, 구정 때 임시 열차의 증편도 못하게 했다. 설을 앞둔 떡 방앗간 조업 단속도 강화했다. 이 같은 기조는 전두환 정권 초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1984년 12월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구정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기로 발표했고 다음해 1월 대통령령이 개정돼 처음으로 음력설은 공휴일이 됐다. 다만 명칭은 ‘민속의 날’이었다. 음력설이 본래 이름을 찾은 것은 ‘6월 항쟁’ 이후다. 1989년 2월 정부는 ‘민속의 날’을 ‘설’로 바꾸고, 3일간 쉬도록 했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음력설’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100여 년 동안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력설 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 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설은 우리에게 단순한 음력 1월1일 이상의 의미가 있어서일 것이다. 설이 우리에게 고향과 핏줄,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명절로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박지경 서울취재본부장 j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