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많은 이들에게 ‘그림 읽기’의 입문서와도 같은 책이었다. 무엇보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어우러진 그림과 작가, 그리고 여행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책의 저자가 대한민국에서 사상범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서승·서준식 형제의 동생으로 재일 조선족 청년 서경식이라는 사실도 화제였다.

이후 ‘나의 서양음악 순례’, ‘나의 조선미술 순례’ 등을 출간한 서경식(도쿄게이자이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가 이번에 펴낸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방문,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나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에세이다.

책은 미켈란젤로, 모딜리아니, 단테, 카라바조,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등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을 번역한 최재혁의 말처럼 오래된 독자들에게 이번 책자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충실한 속편처럼 느껴진다. “옛 친구와도 같던 미술가와 미술품, 거리 풍경들을 소환하며 거슬러 올라가고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 여행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의 어느 부분을 자꾸 들춰보게 된다. ‘젊고, 성급하고, 무지했다’던 30대의 청년이 찾았던 이탈리아는 60대가 돼 다시 방문했을 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토리노 여행길에서 만난 프리모 레비와 관련된 부분이다. 유대계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하며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했지만 1987년 자살하고 만다. 프리모 레비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하고, 다큐 제작에도 참여했던 그는 프리모 레비가 자살한 아파트와 묘지를 찾는 여정, 프리모 레비가 체포되는 모습을 기억하는 노인과의 만남, 그의 친구·가족과의 인터뷰 등을 들려준다.

저자는 책 제목에 굳이 ‘인문기행’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에 대해 “나의 바람은 인문학적인 정신을 과거 그대로 복고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재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처한 위기를 자각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비·1만8000원〉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