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사이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이고, 더욱이 나의 견식, 나의 경험으로는 알 길이 없어” 그녀는 떠나기로 한다. 젖먹이 어린애를 포함해 세 아이가 있고, 70 시어머니가 있었지만 “심기일전의 파동을 금할 수 없어” 감행한 일이었다.

그녀는 1927년 6월 22일 경성역에서 출발한다. 그녀가 향한 곳은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으로 무려 1년반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지금부터 90여년전 그녀는 세계일주를 감행한다. 그녀는 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1896∼1948)은 여러가지 ‘최초’를 가지고 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고, 최초의 여성 동경 유학생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그녀는 최초로 세계일주 여행에 나선 여성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나혜석의 세계일주 기행문을 모은 책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나혜석’이 나왔다. 그녀의 기행기는 단편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다. 이번 책은 그녀가 남긴 23편의 기행문(신문기사 2편 포함)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에 흑백 그림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나혜석이 유럽 현지에서 느낀 감흥들을 담아 작업한 그림들을 함께 실어 여행의 느낌을 복원해냈다.

한달여간 시베리아를 횡단한 후 파리에 1년간 머물며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한 나혜석은 미 대륙을 둘러보고 태평양을 건너 돌아온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화단을 동경하고 구미(歐美) 여자의 활동을 보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들은 예술기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만난 반 다이크의 작품들, 밀리는 군중 사이에 끼여 찾은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경험, 고갱·고흐의 그림을 만난 뤽상부르 미술관의 기억 등 그녀의 글을 따라 가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철저한 예술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늘 시대와 불화였던 한 여성의 고민과 그 고민을 깨트리고 성장해 가는 과정 등도 만날 수 있다.

3·1운동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고 변호사였던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 과정에서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이혼 고백서’를 발표한 그녀는, 파리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최린과의 연애사건 등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섰고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다.

〈가갸날·1만2800원〉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