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30년 한빛원전 진단한다 ⑧ 탈핵선언 독일의 고민 <중>
2017년 11월 15일(수) 00:00 가가
독일 산골마을의 교훈 … 핵폐기장, 정치적 판단 안된다
지난 1977년 독일 정부가 원전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사용후핵연료)을 저장하는 부지로 낙점하고 지질조사를 벌여왔던 고어레벤 핵폐기물 저장시설의 모습. 지역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이 “후보지 결정이 과학적인 조사를 근거로 결정되지 않고 정치적 판단으로 정했다”며 대대적으로 반발하면서 독일정부는 2005년 계획을 백지화했다. /고어레벤(독일)=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
지난 9월 7일 독일 니더작센주 주도(州道) 하노버에서 150㎞가량 떨어진 인적 드문 산골마을 고어레벤.
2차선 포장도로가 끊기는 곳은 철조망으로 외부와 차단돼 있었다. 철조망과 담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한때나마 독일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부지로 선정됐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시설이다. 사방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설 정문 앞에는 무장을 한 경비가 지키고 섰다.
정문에서 50m나 떨어졌을까. 시설 맞은편 숲 초입에는 서너 개의 움막이 보이고 그 안에는 해골이 그려진 핵폐기물 저장 용기(caster) 모형이 나뒹굴었다. 움막 벽면에는 반핵 시위 사진과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로 도배가 돼 있다. 시설과 숲 초입의 움막 사이 공터에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가져다 둔 배 한 척이 있고 그 주변에는 고어레벤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이 연(年) 단위로 적힌 기다란 나무 벽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정부의 철회 결정으로 반핵운동가들의 활동은 멈춰섰지만 이곳엔 여전히 고어레벤으로 옮겨지는 핵폐기물 저장 용기 운반을 저지하려고 철로에 드러누운 청소년들, 농기계를 이끌고 경찰과 대치 중인 수천명의 반핵 운동 시민들을 담은 사진들이 시설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다시는 정치적으로 핵폐기장 부지를 결정하지 말라. 당국이 결정을 뒤집을 때까지 국민적인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는 시민들의 경고를 위정자들에게 선포하듯이 말이다. 움막과 공터에 붙은 반핵 시위 사진을 보니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면서 세계인에게 ‘핵폐기물의 위험성과 처치 곤란성’을 각인시켰던 독일의 핵폐기장 건설 반대 시위 뉴스가 영상처럼 머리를 스친다.
마을 주민이 다합쳐 1000명 남짓이나 될까. 고어레벤 마을 주민을 비롯한 독일 전역의 환경운동가, 평범한 시민들은 1977년 당국이 동서독의 접경지에 위치한 이곳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고 하자 반대운동을 벌였다. 독일 시민들이 외딴 산골마을 고어레벤에 핵폐기장을 짓는데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폐기물로 여겨지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를 정하면서 ‘과학이 아닌 정치적으로 결정했다’는 믿음이 시민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날 고어레벤에서 만난 주민 쿠르츠 씰(67)씨는 “단지 인적이 뜸한 산골마을이라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동독과의 접경지라는 이유로 정부는 이곳을 핵폐기장 처분장으로 낙점했다.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 압력에 의해 떠밀리듯 결정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정부는 이곳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독일 정부가 고어레벤에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은 ‘정치적 압력에 의해 후보지가 선정됐다’는 국민적 의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 2005년 철회됐다. 독일연방환경부장관(녹색당)이 이 부지 선택의 법률적 효력을 백지화한 것이다. 독일 정부는 2031년까지 부지 선정을 마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전국 지질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나 일본도 1970∼19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저장시설을 추진해왔지만 모두 주민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표류 중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5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28년까지 영구 처분 부지를 선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예정대로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토대로 박근혜 정부는 2050년대 중반까지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을 건설하고, 발전소 내 임시 저장수조가 꽉 차는 일부 원전의 경우 2025년까지 부지 내에 임시 저장시설을 추가로 짓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 또한 정부 뜻대로 진행될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기존 원전이 있는데다, 그 부지 안에 추가로 핵폐기장을 지어 폐연료봉을 넣어두겠다는 것이어서 지역사회가 이를 환영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자칫 임시처분장이 영구적인 핵폐기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그렇다면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지어야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할까.
니더작센에서 만난 반핵운동가 파울 콕(60)씨는 “고어레벤이 주는 교훈은 한마디로 시민사회가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이 공론조사 과정을 거치든, 유치지역 신청을 받아 진행하든 시민사회가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부지 결정 등)을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위험성과 위험의 지속성을 제대로 알리는지, 졸속 추진은 아닌지 등을 주시해야한다는 의미였다.
/고어레벤(독일)=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차선 포장도로가 끊기는 곳은 철조망으로 외부와 차단돼 있었다. 철조망과 담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한때나마 독일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부지로 선정됐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시설이다. 사방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설 정문 앞에는 무장을 한 경비가 지키고 섰다.
독일 정부의 철회 결정으로 반핵운동가들의 활동은 멈춰섰지만 이곳엔 여전히 고어레벤으로 옮겨지는 핵폐기물 저장 용기 운반을 저지하려고 철로에 드러누운 청소년들, 농기계를 이끌고 경찰과 대치 중인 수천명의 반핵 운동 시민들을 담은 사진들이 시설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날 고어레벤에서 만난 주민 쿠르츠 씰(67)씨는 “단지 인적이 뜸한 산골마을이라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동독과의 접경지라는 이유로 정부는 이곳을 핵폐기장 처분장으로 낙점했다.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 압력에 의해 떠밀리듯 결정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정부는 이곳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독일 정부가 고어레벤에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은 ‘정치적 압력에 의해 후보지가 선정됐다’는 국민적 의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 2005년 철회됐다. 독일연방환경부장관(녹색당)이 이 부지 선택의 법률적 효력을 백지화한 것이다. 독일 정부는 2031년까지 부지 선정을 마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전국 지질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나 일본도 1970∼19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저장시설을 추진해왔지만 모두 주민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표류 중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5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28년까지 영구 처분 부지를 선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예정대로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토대로 박근혜 정부는 2050년대 중반까지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을 건설하고, 발전소 내 임시 저장수조가 꽉 차는 일부 원전의 경우 2025년까지 부지 내에 임시 저장시설을 추가로 짓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 또한 정부 뜻대로 진행될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기존 원전이 있는데다, 그 부지 안에 추가로 핵폐기장을 지어 폐연료봉을 넣어두겠다는 것이어서 지역사회가 이를 환영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자칫 임시처분장이 영구적인 핵폐기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그렇다면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지어야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할까.
니더작센에서 만난 반핵운동가 파울 콕(60)씨는 “고어레벤이 주는 교훈은 한마디로 시민사회가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이 공론조사 과정을 거치든, 유치지역 신청을 받아 진행하든 시민사회가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부지 결정 등)을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위험성과 위험의 지속성을 제대로 알리는지, 졸속 추진은 아닌지 등을 주시해야한다는 의미였다.
/고어레벤(독일)=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