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대통령 탄핵 사건이라는 거대한 전환점이 있기 전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화두 가운데 하나가 향수(鄕愁)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7년에서 1994년으로, 그리고 다시 19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뿐 아니다. ‘불후의 명곡’ ‘콘서트 7080’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지나온 시절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해 안방을 점령했다.

그렇다면 향수란 무엇인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뜻한다. 그리스어인 노스텔지어(nostalgia)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병적인 귀향 감정”을 의미한다.

향수 현상은 국가를 초월해 점차 보편적인 양상이 되고 있다. 유럽 이민정책의 보수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등 극우화 바람 속에서 이 같은 추억에 대한 그리움은 확산 추세에 있다.

첫사랑, 교복, 집밥, 고향, 교복, 쎄시봉, 애니팡까지 한국 사회의 여덟가지 향수 풍경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책은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노스텔지어’를 매개로 한국 사회를 입체적으로 읽어낸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비롯 정치학, 국문학, 인류학, 교육학 등 모두 8명의 전공자들은 향수 현상을 분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한마디로 책은 우리 사회 향수 현상의 원인과 양상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최근의 정권 교체 이후 향수 현상이 다소 수그러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향수 현상의 속성과 발생 논리에 의해 설명되거나 맞닿아 있다”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향수 가운데 하나가 음식에 관한 부분이다. 요즘 인기 있는 방송 가운데 하나가 ‘먹방’이다. ‘시골밥상’, ‘어부밥상’, ‘삼시 세끼’ 등은 과거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박형신 사회학 박사는 “음식 향수의 요체는 음식의 맛을 가장한 ‘정’으로 표현되는 가족 감정이다. 따라서 어머니 손맛의 감정구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이라며 “어머니 손맛 향수는 먹기의 공동체성의 상실에 대한 개별화·파편화된 현대인의 감정적 반응”이라고 본다.

그러나 저자들이 바라본 향수 풍경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쎄시봉, 애니팡, 교복 여행의 열풍이나 386세대 작가들의 운동권 향수에서는 특정 세대 불안과 인정 욕구를 포착한다. 정치적 향수의 사례 가운데 하나인 박정희 향수에 대해서는 특정 세대의 고유한 문제로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감정의 민주화’라는 장기적 과제 속에서 박정희 향수를 극복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본다.

저자들은 향수는 시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반영하지만, 이 구조가 밝혀질 때 억압의 실체를 밟고 미래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감정이 행위를 견인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향수를 벗어난다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인간은 “원초적인 분리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를 견인하는 매개로 ‘성찰적 노스텔지어’가 필요한 이유다.

〈한울·2만90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