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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아! 임을 위한 행진곡

2017. 05.17. 00:00:00

“나가자, 조국의 아이들이여/ 영광의 날이 왔도다/ 우리들 앞에/ 폭정의 피묻은 깃발이 서 있다/ 들리는가, 저 흉포한 군사들의 사나운 소리가/ 그들은 우리의 품안에까지 쳐들어와/ 우리 아이들과 아내의 목을 베고/ 우리 밭을 유린할 것이다/…. ”(‘라 마르세예즈’ 中)
1792년 4월20일 오전, 프랑스는 혁명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다. 닷새 후인 4월 25일 선전포고령을 지니고 파리를 떠난 전령이 스트라스부르시에 도착했다. 라인강을 사이에 둔 프랑스군과 프로이센군은 일촉즉발 상태였다.
그날 밤, 스트라스부르시장 프레데리크 디트리슈는 공병 대위 루제 드릴을 찾아와 다음날 아침 적진을 향해 떠날 프랑스 군대의 사기를 진작할 군가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대위는 밤을 새워가며 혁명가요를 만들었다. 바로 ‘라 마르세예즈’(마르세이유 군대의 노래)다.
이 노래가 ‘라 마르세예즈’로 불리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석 달 뒤인 7월2일이었다. 마르세이유를 출발한 500명의 지원병이 파리 교외에 다다르자 이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파리지엥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때 시민들의 귀에 군인들이 부르는 힘찬 멜로디가 들렸고 이내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에 사로잡혔다. 구경나온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라 마르세예즈’ 를 연호했다.
1795년 7월14일, 마침내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공화국의 국가로 선포됐다. 하지만 혁명과 공화국의 이념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나폴레옹 제정시대, 제3제정시대에는 금지곡으로 묶였다. 제3공화국 시절인 1879년 햇볕을 다시 보게 된 라 마르세예즈는 현재까지 프랑스 국가(國歌)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라 마르세예즈’가 호전적인 가사에도 국가로 애창되는 이유는 역사성이다. 시민과 군인들의 희생으로 얻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다시 5·18 주간이다. 하지만 올해는 광주시민들에겐 그 어느 해보다도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에서 제창하라고 지시해 올해 제37주기 5·18 기념식에서 모든 참석자들이 목놓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반대로 9년간 제창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임을…’이 조속히 5·18 기념곡으로 공식 지정되고 박제된 예술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생활속 예술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오월의 난장’에서 3인조 밴드 ‘타카피’의 ‘임을 위한 행진곡’ 록버전 공연은 인상적이었다. 단조 선율의 비장미를 자아내는 행진곡도 좋지만 가슴을 뛰게 하는 빠른 비트의 드럼사운드 역시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콘서트에 참석한 20대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머지 않아 ‘임을 …’이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는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처럼 널리 애창될 날을 기대해본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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