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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호남이 만든 꽃놀이패 대선

2017. 04.07. 00:00:00

쉬는 날, 연달아 영화 두 편을 봤다. 오전에 본 영화는 찜찜했고 오후에 본 영화는 아름다웠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리고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일 포스티노’(The Postman, 1994).

홍 감독의 영화에 대한 느낌은 순전히 주관적이지만 아마 어떤 선입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유부남 감독과 바람이 난 여배우의 자기변명 아닐까 하는. 결국 그런 예상은 그다지 빗나가지 않았다.

래드포드 감독의 ‘우편배달부’는 과연 듣던 대로 깊은 울림과 짙은 여운이 있었다. 이탈리아 작은 섬의 아름다운 풍광.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그에게 편지를 배달하며 시(詩)에 눈을 떠가는 어부의 아들 마리오.

두 영화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시(詩)가 나온다는 것.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제목 자체가 월트 휘트먼의 시(‘On the Beach at Night Alone’)에서 따온 것이다. 박종하의 시 ‘감나무’를 낭송하는 장면도 보인다.(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벌써 생각이 나지 않으니 나이 탓을 해야 하나.)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나 아파요. 하지만 낫고 싶지 않아요.” 마리오가 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순전히 아름다운 처녀 베아트리체 때문이다. 연애시를 보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 우편배달부 청년 마리오가 묻는다. “시가 뭐냐?”고…. 네루다가 대답한다. “메타포(Metaphor)!” 그리고 덧붙인다. “메타포(은유)란 뭐랄까,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 어떤 다른 것과 비교하는 거지.”



춘향이와 보조 타이어



네루다의 말처럼 시는 메타포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 알고 있는 그 은유는 바로 ‘낯익은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적 발견’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호수요” 여기에서 ‘호수’는 비유되는 대상인 원관념(‘내 마음’)이 잘 드러나도록 돕는 보조관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라는 비유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정치판에 등장하는 은유다. 예를 들면 홍준표 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춘향인 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었다”고 한 발언 같은 것이다. “동지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내는 나비의 날갯짓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 같은 이재명 시장의 패배 연설이 화제가 된 것도 비유를 적절히 잘 활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해 “국민들이 일종의 보조타이어로 생각하고 지지해 준 것”이라고 한 발언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되든 야당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할 때 ‘보조 타이어’라는 비유는 그들 입장에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들은 국민의당이 가만있을 리 없다. 우리가 보조 타이어라면 “문 후보는 펑크 난 타이어, 폐타이어임을 자인한 꼴 아니냐”며 바로 맞받았다. 은유를 매개로 한 재미있는 난타전이다.

하지만 새 타이어인지 닳고 닳은 타이어인지는 차의 주인인 국민이 알아서 판단한다. 이대로는 도저히 달릴 수 없다고 판단해서 폐타이어를 교체한 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었다. 이제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에 성능 좋은 타이어를 달아야 할 텐데 금방 펑크 날 타이어만 도처에 널려 있다면 큰일 아닌가.

타이어가 좋아야 자동차도 잘 달린다. 타이어 얘기를 하다 보니 자동차 운전에 관한 유머 하나가 떠오른다. 이승만은 초보운전, 박정희는 과속운전, 최규하는 대리운전, 전두환은 난폭운전, 노태우는 졸음운전, 김영삼은 음주운전이란다. 김대중은 안전운전, 노무현은 모범운전인데 이명박은 역주행을 했단다. 그리고 박근혜는? 무면허운전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음 대통령은 어떤 운전을 하게 될까. 과연 ‘베스트 드라이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틈도 없을 만큼 대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한 달 후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된다. 불과 ‘서른’ 날 정도만 지나면 우리는 비로소 ‘설운’ 세상을 떠나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공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혹시 ‘좋은 대통령’이라고 인정받는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일까? 황상민 전 연세대학교 교수는 “대통령은 연예인과 같은 과(科)여서 인품이나 공약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 사람을 보는 이미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지난 4일, 광주일보 제5기 리더스아카데미 강연)



대세론 가고 대체론 오나



그는 “어떤 정치인에게든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내가 보고 싶은 것 그리고 볼 수 있는 것만 본다”는 말도 했다. 결국 “좋은 대통령을 만드는 것도 나쁜 대통령을 만드는 것도 대통령 자신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대통령을 뽑아 놓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공약 등을 잘 살펴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만큼은 마음을 크게 졸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누가 되든 10년 만의 정권교체가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여섯 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지만 최근 대선 판도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강(兩强) 구도로 수렴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며 철옹성처럼 굳건했던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이제 ‘대체론’이 부상하고 있다. 마치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인 양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 안철수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장미 대선’은 누군가에게는 ‘꽃 피는 봄’이요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봄’이 될 것이다. 이들 중 누가 꽃 피는 봄을 맞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만 보면 즐거운 ‘꽃놀이패’인 것만은 확실하다. 지난 총선을 통해 이런 선거 구도를 만든 것도 다름 아닌 호남 사람이었다.

이번 선거 역시 호남의 민심을 잡는 이가 최종 승자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랑은 나비와 같아서 잡으려 하면 달아나고 가만히 있으면 손등에 와 내려앉기도 한다. 하지만 호남 민심은 가만히 있어도 날아와 손등에 내려앉는 ‘나비’가 아니다.

따라서 호남의 마음을 열기 위한 이들 후보들의 보다 적극적인 구애와 그에 걸맞은 실천은 여전히 절실하다.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쑥스러워 했던 그 순진한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은유를 배우고 시를 배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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