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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나는 남자도 아니다

2017. 02.24. 00:00:00

“역사나 문화에 관한 소양이 없는 변호사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다.”(W.스콧)

옛날에 꾀꼬리와 뻐꾸기 그리고 따오기가 서로 우는소리 좋음을 다투었다. 이들은 다툼이 심해지자 몸집이 훨씬 큰 황새에게 판결을 부탁하자고 합의했다. 아무래도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던 따오기는 개구리와 우렁이 등을 잡아 황새에게 바치며 청탁을 넣었다. 당시는 김영란법이 없었던 때라 황새는 ‘개구리 뇌물’을 덥석 받아 챙겼다. 이윽고 송사의 날이 밝았다.

먼저 꾀꼬리가 고운 소리로 아뢰니 ‘봄의 꽃 속에서 춘풍을 타고 우는 소리’인 듯했건만 황새는 ‘그 소리가 비록 아름다우나 애잔하여 쓸 데가 없다’고 하였다. 이어 뻐꾹새가 마치 ‘아이유(24)의 삼단고음’ 같은 고성(高聲)을 자랑했으나 황새는 ‘외로움이 너무 배어 있다’며 물리쳤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된 따오기. 자신 없는 목소리로 한마디 ‘따옥’ 했을 뿐인데 황새는 “마치 장비 의 호통 소리만큼 웅장하다”며 무릎을 쳤다. ‘황새 결송’이라는 제목의 고전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결송’(決訟)은 백성들 사이에 일어난 소송 사건을 판결하여 처리함을 말한다.)

인간의 송사(訟事) 문제를 조류(鳥類)에 가탁(假託)하여 표현한 우화소설로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까치전’도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까치가 높은 나무 끝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학·두루미·까마귀·꾀꼬리 따위의 온갖 우족(羽族: 날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들을 초청하여 낙성연(落成宴)을 베푼다.

그러나 초청받지 못한 비둘기가 불만을 품고 찾아가 다투다가 까치를 죽이고 만다. 과부가 된 암까치는 군수에게 고변(告變)하게 되고 낙성연에 참석한 우족들의 증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이미 뇌물을 먹은 두꺼비가 까치의 실족사라고 위증을 하는 바람에 비둘기는 풀려나게 된다.

이 엄중한 시국에 나는 왜 이리 한가롭게 옛날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중환 변호사를 비롯해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있는 그 많은 변호사들이 마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 때문일까? 돈만 있으면 귀신도 하인처럼 부릴 수 있다는데,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을 돕고 있는 변호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하는 걸까?

얼마 전 최순실을 향해 “염병하네”라고 외친 청소노동자가 국민의 마음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하더니, 또 얼마 전엔 법원 재판정에서 변호사를 향해 “돈이 그렇게 좋으냐?”라고 외친 여성이 화제가 됐다. 이 여성 방청객 역시 변호사들이 거액의 돈을 받았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국정 농단 사건이 처음 드러나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날이면 날마다 터져 나오는 소식들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소설이나 영화보다 재미있기도 했었다.(실제로 소설책이 안 팔리고 영화 관람객이 줄었다고 한다) 한데 요즘엔 뉴스를 보면 울가망하다 못해 짜증이 나고 부아가 치미는데, 이게 다 죄 지은 사람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와 변호인들의 온갖 ‘황당 변론’ 때문이다.

“난세의 영웅? 나라가 어지러우니 구국의 의인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서석구, 김평우, 김진태, 정광용, 정규재, 주옥순, 신혜식, 장기정, 윤창중…. 헤아릴 수 없는 태극기 의병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중 최근엔 김평우(72) 변호사의 맹활약(?)이 돋보인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는 그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서 한 말을 들으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것 같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하면 어찌 대한민국의 남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여자 대통령 하나 지켜 드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니 거 참. 이제 나는 졸지에 남자도 아니게 된 것인가.

김 변호사의 아버지는 소설가 김동리(1913∼1995)다. 김동리는 결혼을 세 번 했는데 생전에 “첫 번째 여자에게서는 자식을, 두 번째 부인에게서는 재산을, 세 번째 여자에게서는 사랑을 얻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누리꾼들은 “김동리 작가의 명예를 아들이 망쳐 버렸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또 엊그제 헌재 변론에서 ‘법’(法) 대신 ‘밥’을 외치며 재판 진행까지 방해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뇨가 있어 어지럼증 때문에 음식을 먹어야 하니 점심 식사 후 변론하겠다며 떼를 쓰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삿대질과 고성으로 항거(?)한 것이다.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선망의 대상이다. 물론 유명인이나 재력가의 심부름이나 하는 ‘집사 변호사’들도 있긴 하다. 집사(執事)란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안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최근엔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수임 경쟁 과열 등으로 인해 일반인을 상대로도 심부름 업무를 주로 맡는 변호사도 많다.

변호사 세계에서도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 어김없이 적용되는데 대통령이나 최순실 측 변호인들이야 ‘먹을 것’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국정 농단 죄인’들을 저리 지키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짓 하려고 변호사 됐나” 하는 자괴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기색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 특검에서 이경재 변호사는 최순실에 대한 인권 침해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그들 변호사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피의자의 인권까지 챙겨 주었는지도 알 수 없다.

물론 그 누가 됐든 인권은 지켜져야 할 중요한 가치다. 혹시 헌법 1조 말고 대한민국 변호사법 제1조를 아시는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이거야 당사자인 변호사들이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앞부분의 ‘인권 옹호’는 말하면서 왜 뒷부분의 ‘사회정의 실현’은 애써 모른 체하는 건가.

“서울이 피로 뒤덮일 것이다.” “법관은 약한 여자 편들어야.”

거친 막말의 법정 모욕과 ‘황당 변론’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국정 농단’에 이은 변호인들의 ‘헌재 농단’을 보며 W.스콧(영국의 시인·소설가·변호사)의 명언을 되새기게 되는 요즘, 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신문의 ‘한 컷 만화’에 시선이 확 꽂혔다.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작가의 생각을 적은 글(지문)이 무릎을 탁 치게 한다.

“개는, 자신의 주인이 아니면 지극히 ‘선한 자’여도 무조건 짖고…. 주인이 아닌 ‘악한 자’여도 먹이만 주면 꼬리 치며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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