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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이 ‘비상시국’에 정말 애쓰십니다

2016. 09.30. 00:00:00

사랑이 있어야 미움도 있다. 극도의 증오는 동전의 양면처럼 뜨거운 애정의 다른 한 표현일 수 있다. 사랑도 미움도 모두 관심의 증거다. 일찍이 프랑스의 여성 화가 마리 로랑셍(1883∼1956)도 이를 깨달았던 모양이다. ‘잊혀진 여인’이라는 시가 이를 말해 준다. 과연 어떤 여자가 가장 불쌍한 것일까? 병든 여자, 버림받은 여자, 쫓겨난 여자, 죽은 여자? 다 아니다. 그녀에 의하면 이들보다 더 가여운 여인이 있으니 바로 잊혀진 여자다.

그래서일까. 여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쓴다. 오죽하면 “정치를 하려거든 본인 부고(訃告)만 빼고 그 무엇이든 신문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한데 호남에서 새누리당 사람들은 ‘잊혀진 존재’다. 그들에게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으니 비판도 없다. 신문 칼럼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는 행태’를 봐서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그들이 매번 칼럼의 소재가 돼야 마땅할 것이지만 이들은 야당에 비해 훨씬 ‘매’를 덜 맞는다. 다 아는, 너무나 뻔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뻔한 얘기는 재미가 없다. 재미없는 얘기를 쓰면 독자도 외면한다.

그럼에도(신문 끊는다는 말씀만은 제발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이번에는 몇 마디 좀 해야겠다. 왜냐? ‘비상시국’이기 때문이다. 비상시국이란 ‘전쟁·사변·재해 따위로 국가가 중대한 위기를 맞이한 시국’을 말한다. 한데 대부분의 국민은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무슨 비상시국이냐는 반응인 것 같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지진으로 아파트가 흔들리긴 했다. 그런데도 이 엄중한 비상시국을 태평성대로 착각하고 있다면 모두들 안보 불감증이나 안전 불감증 환자들일 것이다. 가여운 국민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이 비상시국임을 때때로 깨우쳐 주시는 자애로우신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비상시국에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무지(無知)를 깨우쳐 주셨다. 이로써 제2의 일해재단(전두환이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든 재단)이라는 의심을 받는 미르재단 등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일거에 뭉개 버림으로써 위대한 영도력을 보여 주신 것이다.(한데 미르재단이라는 이름부터가 좀 수상하긴 하다. ‘미르’는 용(龍)의 옛말이요 용은 임금(대통령)의 상징이니 말이다.)

대통령께서는 또한 국회가 일개 농림장관을 해임했을 때도 비상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며 ‘철없는 국회’를 나무라셨다. 그럼에도 말귀가 어두운 이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인 듯하다. 본인 직함에 ‘비상’을 달고 있음에도 ‘비상시국’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솔직히 대통령님께서는 곱이곱이마다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시며 비상시국을 잘도 넘기셨다”고 비아냥거렸으니. 대통령이 전해 들으셨다면 탁자를 치고 분노하실 일이다.

어찌 됐든 우리가 더욱 감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도 장차관들에게 골프 치라며 대통령께서 하해(河海)와 같은 넓은 아량을 베푸신 점이다. 골프를 치면 ‘내수진작’(內需振作:국내 소비를 일으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결국 경제를 살려 배고픈 국민을 먹여 살리려는 높으신 뜻이 배어 있는 말씀이리라.

하긴 13억 인민을 통치하는 중국 국가 주석이 ‘음수사원’(飮水思源) 운운하면서 당치 않은 훈계를 늘어놓을 때도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전혀 굴하지 않고 “5천만 국민의 안위가 어깨에 걸려 밤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그러니 이 비상시국에 백성들을 ‘어엿비 너기시는’(불쌍하게 생각하시는) 그 넓은 오지랖을 어찌 우러러 칭송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박 대통령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단어는 ‘신의’(信義)요 가장 싫어하시는 단어는 ‘배신’(背信)이라는 것쯤이야 이젠 삼척동자도 안다. 일찍이 당신은 옛 고사(故事)에 나오는 미생(尾生)에 비유되기도 했으니,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빠져나오지 않고 기다리다 결국은 익사하고 말았다는 바로 그 사람.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당신께서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처럼 원칙과 신의를 지키는 정치인으로 각인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불순분자들은 대통령의 원칙과 신의를 고집과 아집이라 폄하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미생에 대한 평가는 아주 오랜 옛날에도 사람에 따라 엇갈리긴 했다. 저 유명한 도둑인 도척을 새사람으로 만들고자 찾아간 공자(孔子)가 신의의 가치를 말하면서 미생을 들먹거리자, 도척은 콧방귀를 뀌고 이렇게 반박했다는 것 아닌가. “흥! 그런 놈은 쪽박 들고 빌어먹는 거지보다 못한 놈이지 뭐요. 쓸데없는 명분에만 매달려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놈이 어떻게 인생의 진미를 알겠소?”

명분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대통’(大通)을 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불통(不通)의 극치’라는 세간의 혹평이 있는데 역시 불순한 자들의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한편으로 마냥 행복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곁에 누구보다 더 믿는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자식처럼 믿는다는 의미이니 오해는 마시고) 다름 아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다.

이 대표는 지금 장관 해임 건의안을 상정한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 중이다. 여당 대표의 단식은 단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단식 농성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단식 충성’이 더 맞을 것 같긴 하다. 물론 이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모이는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거 야당 총재들이나 하던 단식을 과감하게 집권당 대표가 추켜들었으니 그 ‘발상의 전환’과 ‘창조적 사고’가 단연 돋보인다. 평소 ‘신의’를 중시하시며 ‘창조’를 부르짖는 대통령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만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밥까지 굶고 있는 이 ‘의리의 돌쇠’를 보면서 어찌 흐뭇한 미소를 머금지 않으실까.

부디 그 미소 잃지 마시고, 기왕 이렇게 된 것 절대 물러서지 마시라. 간언(諫言)은 건강에 좋지 않으니 절대 듣지 마시라. 어차피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비상시국을 헤쳐 나가려면 ‘비선(秘線)과 측근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말 따위는 절대 귀 기울이지 마시라. 미르재단 같은 것도 있으니 일단 한번 믿어 보시고, 부디 건강만 챙기시라. 만세, 만세, 우리 대통령 만만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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