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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가 된 ‘마지막 황제’ 푸이는 자금성을 어떻게 꾸미고 싶었을까
‘천의 얼굴’ 베이징 ‘3박4일’ 여행기

2015. 12.03. 00:00:00

500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황궁 자금성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중화민국 초기의 수도로 8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징(京)’이라고도 부르는 이 도시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베이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29년 교외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60만∼23만 년 전의 화석을 통해 이곳 문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6만800㎢ 면적에 2200만 명이 살고 있는 베이징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교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중국뿐 아니라 해외 유학의 필독서가 된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읽으면 베이징은 사계절 동안 매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보다 더 참을성 없는 ‘빨리빨리’ 심보가 있는가 하면, 도시화에 때 묻지 않은 베이징 시민들의 푸근한 인심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베이징을 3박4일 일정으로 체험하는 것은 ‘코끼리 뒷다리 만지는 격’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륙의 스케일’을 느끼려면 만리장성·톈안먼 등의 ‘정석’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옳지만 베이징의 천의 얼굴을 다 보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만리장성은 베이징 시내에서 버스로 2시간여 가면 갈 수 있다. 만리장성은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흉노족의 침입을 대비해 만들었다.
버스에 내린 순간 성의 높이에 엄두가 나지 않지만 케이블카로 왕복할 수 있으니 걱정은 접어도 된다. 빠른 속도로 오르고 내리는 케이블카의 투명한 바닥 너머 보이는 아찔한 광경은 덤이다.
공해가 심한 탓에 만 리가 아닌 ‘십리’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으니 날씨 예보를 챙겨야 한다. 2000년 된 건축물에 하루 수백, 수천 명 발이 오가는 데도 크게 훼손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70도 경사를 보이는 구간에서는 숨이 차지만 난간에 의지해 주위의 광활한 풍광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면 된다.
삼삼오오 함께 여행 와 기울어진 구간에 나란히 서서 ‘셀카’를 찍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베이징의 ‘소호’라 불리는 다산쯔 798 예술거리는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과 비슷한 예술의 거리다.
화가·공예가 등 예술인들은 물론 갤러리를 겸하는 카페와 가게들이 모여 있다. 공산품과는 다르게 독특하고 비교적 저렴한 가방, 찻잔, 장식품 등을 구하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20∼30대 젊은 층이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다른 관광지보다는 영어로 소통하기가 쉽다.
‘789’로 잘못 읽기 쉬운 이곳은 원래 국영 798 공장을 비롯, 구소련의 지원을 받은 무기 공장이 밀집된 공장지대였다. 냉전이 끝난 후 무기 공장이 하나씩 철수했으나 그중 706, 707, 718, 751, 797, 798 등의 공장은 전자공업제품의 생산 공장으로 남았다. 인사동 거리와는 다르게 스산하고 삭막한 느낌을 주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베이징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 ‘해피밸리’에서 연중 공연되는 ‘금면왕조’(金面王朝)는 중국 고대 신화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가무 쇼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한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무대미술, 음향, 의상, 출연배우 등 구성원만 200여 명이다. 매일 열리는 두 차례의 공연에 수천 여 명이 다녀간다.
이 뮤지컬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국감’ 구설수에 오른 장본이기도 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5명이 중국 일정 첫날 이 뮤지컬을 관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면왕조’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대사가 없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금빛가면을 쓴 여왕이 다스리는 여인천하(금면왕국)에 어느 날, 남자들만 사는 남면왕국이 쳐들어온다. 치열한 싸움 끝에 금면왕국의 승리로 끝나고 남면왕국의 왕은 포로가 된다. 그러나, 이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이를 시기한 하늘의 저주로 대홍수를 맞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금면왕국을 지켜낸다는 줄거리다.
극이 진행되면서 관중이 하나같이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 장면은 두 번 정도 나온다.
하나는 휘황찬란한 금빛 의상을 입은 여왕이 등장할 때와 또 하나는 큰 홍수를 맞아 천지가 혼란에 빠지는 장면이다. 5t의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무대를 뒤덮는 장관을 보며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중국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근대 정치의 중심지가 된 톈안먼 광장은 현재 베이징 관광객의 필수 코스이자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기념하는 열병식과 축제의 장소로 쓰인다. 톈안먼(천안문), 인민영웅 기념비, 인민대회당, 마오주석기념당, 중국 국가 박물관 등이 광장을 감싸고 있다.
매일 오전 마오주석기념당 앞에는 마오쩌둥을 참배하기 위한 시민들의 줄이 1㎞ 넘게 늘어져 있다. 1시간 이상씩 기다린 이들은 기념당 안의 마오 주석 조각상 앞에 흰 국화를 바치고 돌아간다.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뒤 벽면에는 ‘위대한 영수와 도사 마오 주석 영수 불후’란 글이 새겨져 있다.

영화 ‘마지막 황제’가 실제 촬영된 자금성은 베이징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이다. 천안문을 지나 10여분 걸어가면 자금성이 나온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87년에 자금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906년 황제가 된 네 살 푸이가 옥좌가 있는 자금성 태화전에 앉은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웅장한 자금성 경내에는 의외로 나무가 한 그루도 심어지지 않았다. 자객이 나무에 숨어들어 황제를 위협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전언이다. 자금성이 ‘황제가 사는 성역’이라는 뜻을 지닌 것처럼 황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이 궁전에는 명·청 시대 500여 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다. 천하를 호령했지만 바람 앞의 등불 같이 살았던 이들의 일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1945년 만주국이 멸망한 뒤 푸이가 식물원 정원사가 된 점을 떠올리면 자금성의 조경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자금성의 ‘자(紫)’는 북극성으로 이뤄진 17개의 별자리를 뜻한다. 북극성은 영원히 한 자리에 있는 별로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져 황제를 의미했다. 별들의 색인 자색은 곧 황제의 색이다. 황궁의 담장이 붉은빛이 감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제가 사는 곳이기에 일반 백성들의 접근이 금지된다는 의미 ‘금(禁)’자가 붙었다.
/베이징=백희준기자 bhj@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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