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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부탁해’
박 성 천
문화2부 차장

2015. 06.25. 00:00:00

작가 신경숙은 표절 논란에 대한 사과도 ‘문학적으로’ 했다. 그녀는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작품에서나 쓰는 화법을 구사해 다양한 의미 부여를 가능하게 했다. 표절을 했다는 것인가? 안했다는 것인가? 변명 같은 사과에, 소설 같은 표현에, 작가적 양심을 믿었던 독자들은 실망감에 빠졌다.
신경숙에게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사가 따른다. 일정 부분 맞는 얘기다. 신 작가가 이룩한 나름의 문학적 업적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상찬 일색의 주례사 비평이 만든 ‘거품 작가’라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출판사와 문예지, 비평가들이 합작해 만든 ‘신화’라고 비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도 있다. 필사나, 독서의 영향으로 특정한 문장이나 표현이 뇌리에 남을 수 있다. 창작은 되새김질과 숙성의 과정이 연계되기에 그럴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이것은 아니다. 신 작가는 새 작품집을 발간하면 수만 권에서 수십만 권씩 판매고를 올리는 작가다. 베스트셀러 작가 신경숙은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과 부채의식을 지녀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23일 작가회의 토론회에서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된 한국문학이 신경숙 사태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SNS를 통해 “창비(창작과비평)와 문동(문학동네)이라는 한국 문학계의 권력 집단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공생관계가 깔려 있다”고 단정했다.
집중화된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문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철옹성 같은 절대권력도 무너지는데 하물며 인간의 내밀한 생각과 감성, 삶을 다루는 문학인들 오죽하랴. 물론 어느 분야든 최고 위치에 오른 이의 권위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권위는 인정하되 폐쇄적인 권력은 생태계 건강성을 위해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세계 각국 언론도 신경숙 사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신 작가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36개국에서 번역될 만큼 인지도가 높다. 이제 그녀가 ‘문학적 사과’가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때다. 문학계도 폐쇄적인 문단권력을 개선하고 윤리규정을 마련하는 등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신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가출을 형상화한 얘기다. 공교롭게도 한국문단은 자체 정화작용을 상실해버린 ‘문학을 부탁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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