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세풍일반산업단지 개발 주체인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의 현실이다. 자금 조달에 실패하고 사업시행자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10년 넘게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은 자칫하면 또다시 과거로 회귀할 것처럼 보인다.

광양만청은 기업 유치를 위해선 산단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5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려했지만, 정작 금융기관들은 광양만청의 채무보증도 부족하다며, 광양시의 토지매입 약속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기간 조성 과정을 지켜본 광양시는 참여할 의사도 없고, 법적으로 참여하기도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사업비 5219억원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기로 했다. 최근 확인해보니 실제 사업비는 모두 4976억원으로, 어느새 243억원이 줄어있었다. 검토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변경승인을 받으려했다는 해명이다. 다시 국비 476억원을 제외한 4500억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물었다. 광양만청의 계산은 이렇다. 프로젝트 파이넨싱(PF) 3775억원, 선분양대금 200억원, 특수목적법인인 세풍산단개발(주) 투자기관 5곳의 출자금 50억원, 공사유보금 225억원, 총수익 250억원. 이것을 모두 합하면 4500억원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금융조달이 안 돼 멈춰섰지만, 사실 엉성한 사업 추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사업비의 100분의 1을 조금 넘는 투자기관의 출자금을 제외하면 모두 추정치다. 사업비가 ‘고무줄’인 이유다.

지방채보다 높은 금리, 채무보증에 토지매입 약속까지 마치 ‘사채업자’의 행태와 유사한 금융기관으로부터 번번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분양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수요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공급 먼저하고 보는 시대는 지났다. 인구정체, 제조업 약화 기조 속에 현재 추진되는 산단을 모두 채우려면, 엄청난 수의 기업이 새로 생겨나거나 우리나라 1년 예산이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신규 투자돼야 할 것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주장을 그저 장난처럼 지나칠 수 없는 처지다.

더 큰 문제는 광양만청은 물론 현재 산단 조성에 나서는 모든 지자체가 미분양사태를 겪을 우려가 큰데도 그에 대한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단 조성을 결정하거나 실무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임기가 정해진 단체장이나 인사 때마다 자리를 옮기는 공직자다. 뒷감당은 모두 지역주민과 미래 세대가 맡게 돼 있는 셈이다. 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부풀려진 성과만 보며 추진하는 ‘빚더미’ 산단 조성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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