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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아이편에 선물 보내지 마시고 선생님께 고운 편지 한장 쓰게 해주세요”
다시 스승의 날을 맞으며

2010. 05.15. 00:00:00

다시 ‘스승의 날’이다. 백화점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사랑과 감사의 달’ 에 스승의 날은 부담스러운 날로 무거운 심정이 되는 것은 저녁 아홉시 뉴스를 보면서 그 이유가 뚜렷해진다. 마치 옴니버스 형식의 두 개의 서로 다른 뉴스는 그날 하루만 ‘스승’이라 불리는 교사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기자가 찾아낸 백발이 아름다운 노교사는 학생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참교육 실천으로 승진은 염두에 없고 시골학교에서 오직 참스승의 길을 걷고 있는 노교사는 나란히 선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거룩하게 보인다.
이어지는 뉴스는 앞의 내용과는 매우 상반된다. 촌지에 휘말린 정신 빠진 교사가 등장하거나 가끔은 무례한 학생과 그의 부모가 서슴없이 교사를 욕보인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고 마무리 멘트는 해묵은지 오래다. ‘학년이 끝나는 2월로 옮기는 것이 스승의 날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길’이라거나, ‘스승의 날 선물은 부담스럽지만 아이를 위해서 하는 수 없이 한다’ 그리고 올해 ‘스승의 날 휴교 학교 비율’을 조사한 뉴스 앞에 스승의 날의 명암은 극명해진다.
나는 담임을 맡은 해 5월 초가 되면 늘 한 통의 학부모 통신문을 보내왔다.
‘스승의 날은 아이 편에 담임선생님께 선물을 보내는 날이 절대 아닙니다. 저와 우리 반 학생들과의 만남은 고작 두 달 보름입니다. 저의 가르침과 교육방향은 이제 출발선에 있을 뿐, 시행착오와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미완(未完)의 교육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릅니다. 교사는 ‘10년 뒤의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 이라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포장된 무언가를 보내 저를 부끄럽게 하지 말아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참으로 주제넘은 통신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학부모 통신문을 보낸 2년 전 스승의 날을 나는 기억한다.
스승의 날이라는 말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아침이었는데 학교에 도착해서는 ‘문제의’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자율학습지도를 위해 평소대로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교실 풍경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교실 바닥에 둥둥 떠다니는 풍선들, 칠판 가득 적힌 나를 향한 달콤한 문장들, 책걸상은 뒤로 밀쳐져 있고 학생들은 그 뒤에 몰려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한 녀석이 나와 컴퓨터의 마우스를 누르자 귀에 익은 음악이 나온다. ‘노바디 노바디 버츄!’ 그러자 어디선가 등장하는 가발 쓴 몇 학생들. 묻는 말에 대답이나 겨우 하던 소심한 녀석, 잦은 지각에 교복 줄이고 얼굴에 색크림 발라 내 속을 태운 멋쟁이, 공부보다는 컴퓨터가 더 좋은 개구쟁이로 구성된 ‘왔다걸스’팀의 노바디 댄스가 끝나자, 곧이어 손담비의 동작과는 다르게 둔탁한 발놀림으로 의자를 넘어뜨릴 것 같은 공부대장 윤성이의 의자 춤, 그리고 스승의 노래 합창으로 자신들이 준비한 공연을 끝냈다.
지출이 많은 5월에 또 하나의 부담이 되는 스승의 날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누구는 풍선을 불고, 누구는 유행가요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내려 받아 컴퓨터에 입력하고, 또 누구는 가발과 옷을 빌려오고, 자신의 노래와 춤으로 선생님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번지게 했던 ‘무료’ 축하식! 그것을 선생님 몰래 준비하는 동안 녀석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을까? 그날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에 뭉클했다.
내가 보낸 통신문의 끝부분은 이랬다.
“이 스승의 날을 그냥 넘기기 아쉽다면 자녀에게 담임인 저를 위해 고운 편지 한 장 쓰게 해주십시오. 저는 우리 반 하나하나를 위해 제 본분을 다할 것이고 늘 사랑할 것입니다.”
이번 스승의 날은 공휴일을 하루 비낀 토요일이다. 공교롭다. 스승의 날이 아니라 차라리 ‘교사의 날’이라고 불렀으면 맘 편할 5월 15일에 교사들은 하루 쉬라고 하면 좋겠다. 그러면 스승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옛 은사님을 찾아뵈려 한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다루기가 어렵고 교직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련다. 백발이 고운 나의 스승님께서는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너희 때도 그랬다. 말 안 듣고 공부 게으른 너희들 가르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김미경 나주 남평중학교 다도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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