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을 눈앞에 두고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김동균(44)씨는 밭 1만4천200㎡에 심어진 배추 수만 포기를 트랙터로 갈아 엎었다. 20여년 전 귀향해 배추·무를 주작목으로 재배해 온 김씨가 가을가뭄 속에서도 스프링클러로 석 달 넘게 정성스럽게 가꾼 배추였다.
“농사가 잘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수확 대신 자식처럼 키운 배추를 자신의 손으로 갈아 엎는 농민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 폐기 대가로 나온 정부 보조금 얼마로 이런 농민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해 전남지역 배추는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30%나 늘어난데다 양호한 작황으로 20% 이상 과잉 생산되며 가격이 작년 대비 3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현재는 중간 상인조차 오지 않을 정도로 거래마저 끊겼다.
전남도는 김장채소값 폭락을 막기 위해 16억원을 긴급 지원해 영암(138.7ha), 해남(107.3ha), 나주(58.6ha), 진도(9.2ha), 신안(7.3ha), 함평(0.8ha) 등 모두 322ha를 10a(300평) 당 50만5천원씩에 사들여 다음달 5일까지 산지 폐기할 계획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4인 기준(20포기) 김장비용을 13만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16만2천원보다 20%나 떨어진 것으로, 배추·무·마늘·파·생강 등 채소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마트에서는 배추 3포기 한묶음이 4천5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심지어 한 행사장에서는 포기당 480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농민이 석 달여 동안 땀흘려 기른 댓가치고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가격이다. 이러한 배추를 산 주부는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속이 꽉 찬’ 배추였다고 말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농민들에게 힘든 한해였다.
한미 FTA 협상을 비롯해 미국 쇠고기 파동, 쌀 직불금 등 농업관련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게다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대와 비료, 농약의 가격상승은 경영비 부담을 더욱 압박했다. 그 결과 가을걷이가 끝난 땅과 들녘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 농민들이 아스팔트로 내몰고 있다.
배추의 산지 폐기는 수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수급 조절은 농민도, 행정기관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대체작물 개발과 함께 유통문제는 함께 고민해야 할 몫이다.
배추를 재배하는 농민뿐만 아니라 정당한 땀의 댓가를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귀향한 ‘젊은 농민’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농정은 요원한 것일까?
/송기동 사회2부 차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