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돌봄의 지극한 책무에 대하여 -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4년 10월 07일(월) 00:00 가가
요즘은 흔하게 돌봄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만 여전히 자기돌봄이라는 표현은 낯설다. 돌봄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행동이고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돌봄이라고 해서 여느 돌봄과 다르지 않다. 사실 돌봄 중에서도 자기돌봄은 가장 근본적인 돌봄이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보살핌이 돌봄이듯,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 자기돌봄이다. 그리고 안개에 갇힌 듯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차분히 챙겨야 할 것이 곧 자기돌봄의 태도이다. 살아있는 동안 돌봄이 필요 없거나 이미 충분한 사람은 없다. 좋은 삶은 돌봄과 배려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중 자기돌봄은 자신을 향한, 자신에 대한, 자신을 위한 것으로, 가장 필요하고 궁극적인 돌봄이다.
긴말이 필요 없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돌본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문화 활동을 하는 모든 것이 자기 돌봄의 행위다. 자신이 현재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 곧 돌봄이다. 그런데 이런 자기돌봄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비하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자기 챙기기를 자기돌봄으로 여기는 탓이다. 잘못된 자기 배려는 자신을 아주 특별하고 우월하게 여기거나 과도한 인정욕구에서 나오기 쉽다. 특히 자신의 지식과 교양, 지위의 우월함을 맹신하는 사람일수록 무례한 인정욕구를 자기돌봄으로 혼동한다. 하지만 자기돌봄은 오히려 염치없는 인정욕구와 자기 기만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하는 것이다. 이런 본래 의미에 맞게 자신을 챙기고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매일 목격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기돌봄의 실천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다. 자기돌봄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진실한 태도와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한 술수나 기술로써 행동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스스로를 왜곡하거나 위선으로 포장하거나 거짓으로 지어내는 것은 해로운 음식으로 자신을 돌보면서,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위한 돌봄이 스스로를 해하는 것이라면, 결코 돌봄이 아니다. 돌봄을 행하는 주체가 곧 ‘나’이며 돌봄을 받는 대상도 ‘나’이기 때문에, 자기돌봄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행하며 배려하는 가장 선한 행위이자 최고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그래서 왜곡되지 않은 자기돌봄은 맹목적인 자기 챙기기와 전혀 다르다.
이러한 자기돌봄의 삶을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 돌봄을 삶의 과업으로 삼고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책무로 생각했다. 여기에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의한 창조물이자 결과물이라는 매우 실존적인 시선이 함께 한다. 이런 자기돌봄의 의미를 철학자 미셸 푸코는 특별히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와 연결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철학적 의미가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실천적 행위의 의미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하는 유일한 일은 여러분이 젊었든 늙었든 자신의 영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영혼을 돌보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다.” 돌봄의 대상이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자기돌봄의 현실은 한순간의 안위와 부질없는 물질적 대가를 위해 자기 정신을 헐값에 거래하는 비루함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일갈은 퇴색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진실하게 돌봄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옳은 길을 향해 노력하라고 요청한다. 자신을 스스로 중하게 여기며 성장을 위한 배려와 돌봄을 행하는 것은 좋은 삶의 근본 조건이다. 상황에 휩쓸려서 자신을 부정하고 진실을 회피하는 것은 자기 돌보기의 거부다. 비싼 음식과 고가의 옷과 이득이 되는 관계는 탐하지만 귀한 생각과 품위 있는 태도와 진솔한 용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자기돌봄은 가치 있는 자기실현을 위한 책무이며, 자신을 진실로 대하는 용기와 행동이다. 그리고 이 자기돌봄은 자신을 함부로 하지 않은 태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타인을 중하게 대하는 상호윤리이자 상식이다. 이 상식과 책무의 윤리를 회복해야 할 때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일갈은 퇴색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진실하게 돌봄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옳은 길을 향해 노력하라고 요청한다. 자신을 스스로 중하게 여기며 성장을 위한 배려와 돌봄을 행하는 것은 좋은 삶의 근본 조건이다. 상황에 휩쓸려서 자신을 부정하고 진실을 회피하는 것은 자기 돌보기의 거부다. 비싼 음식과 고가의 옷과 이득이 되는 관계는 탐하지만 귀한 생각과 품위 있는 태도와 진솔한 용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자기돌봄은 가치 있는 자기실현을 위한 책무이며, 자신을 진실로 대하는 용기와 행동이다. 그리고 이 자기돌봄은 자신을 함부로 하지 않은 태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타인을 중하게 대하는 상호윤리이자 상식이다. 이 상식과 책무의 윤리를 회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