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추억의 냉면
2024년 06월 12일(수) 21:30 가가
내가 냉면을 배운 건 어머니에게서였다. 대단한 냉면도 아니었고, 시내에 있는 남대문시장에서 근처 지게꾼들이 즐기는 싸구려 냉면집에 주로 갔다. 냉면에는 소고기를 넣어야 하니 마니 하는데 그 시절엔 수입쇠고기도 없어서 시장 골목의 허름한 냉면집에서는 쓰기 힘든 재료였다. 그 집 냉면은 오직 늙은 닭고기 몇 점과 얇은 돼지고기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때 먹는 법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먼저 냉면이 나오면 그릇을 손으로 든다.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에 쩌릿하게 퍼져나간다. 그때는 요즘처럼 이른바 ‘슬러시’라고 하는 살얼음 육수기계가 전파되기 전이서서 냉면이든 콩국수든 큰 얼음조각을 한두 개 넣어주었다. 그 얼음 덕에 그릇 밖으로 물방울이 맺히도록 차가웠다. 얼음가게에서 배달해주는 것인데, 더러 깨끗하지 않은 것도 많았으리라. 냉면 먹고 배탈이며 대장균 소동도 일어나곤 했으니까.
손바닥이 차가워져서 마음조차 신선해지면 먼저 육수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간을 본다. 쩌르르한 육수가 식도로 넘어간다. 평양냉면 육수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표현하는 “무슨 행주 빤 물 같은” 심심하고 ‘슴슴함’(이북 사투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그 냄새가 싫어서 얼른 양념을 쳤다. 식초 두 바퀴, 겨자 약간, 그리고는 빨간 다지기 양념 듬뿍. 우리 어릴 때는 매운 거 못 먹고 뭐 그런 거 없었다. 그저 배불리 먹을 수만 있으면 어른 음식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살았다. 그때 그 집 냉면값이 얼마였느냐고 최근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한 백원 했을 거라고 한다. 당시 짜장면이 그 정도 값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싼 집이었다. 요새 냉면은 보통 짜장면의 두 배 값 내외다. 메밀값이 비싸기 때문이라는데, 계절 장사라는 이유도 있다. 냉면 경기는 5월에 시작해서 추석 전에 끝난다. 이름난 집은 덜하지만 여전히 그런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여름 한 철 파는 냉면값을 세게 받는다는 게 그 주장의 골자다.
그런 가게에 백원짜리 냉면도 부담스러운 집안 사정이라 몇 가지 냉면을 집에서 해먹었다. 하나는 그냥 소면 사다가 차가운 오이냉국에 말아먹거나 열무 얼갈이김치에 사온 얼음덩어리 넉넉히 쪼아서 깨어 넣고 냉면을 말았다. 요즘 풍속은 밀가루로 만든 면은 냉면으로 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밀이든 메밀이든 차게 말아먹는 건 다 냉면이라 불렀다.
그런 밀가루 냉면도 좋았지만 제일 기다리는 건 청수냉면이었다. 상표 이름인데 가게에서 사서 만들어먹는 냉면으로는 당시 독보적인 존재여서 아직도 그리 부르는 어른들이 많다. 지역마다 달랐겠지만, 서울은 하여튼 청수였다. 여름이면 얼마나 심부름을 많이 했는지 아직도 그 포장지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파란색 포장지에 상표가 써 있고, 마른 면과 국물용 가루가 들어 있었다. “면을 ○분 삶고 찬물에 행군 뒤 계란 쇠고기 등을 곁들여 드시면 맛이 좋읍니다”라는 조리 안내문이 적혀 있던 것도 생각난다. 언감생심 쇠고기는 넣을 수 없었고 계란 정도는 삶아 올렸다. 오이 썰고 얼음 준비하는 일도 냉면 만들기의 필수였다. 나중에 냉장고를 들이면서 얼음은 더 이상 사오지 않았지만, 새끼줄로 묶어 팔던 조각 얼음을 들고 녹을 새라 번개처럼 골목길을 달리던 기억.
그 상표의 냉면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마트에선 무슨 영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먹고싶을 때마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산다. 옛날 먹던 바로 그 맛이다. 요즘 마트에서는 식품대기업에서 더 그럴 듯하게 ‘파는 냉면’처럼 촉촉한 메밀면을 뽑아 만든 이른바 생면이 팔린다. 내가 먹는 마른 면보다 훨씬 고급 면이고 맛도 괜찮다. 그런데도 나는 여름이면 그 마른 면에 가루스프 들어 있던 저렴한 냉면이 더 생각난다. 음식은 추억이란 말은 그래서 옳다.
<음식 칼럼니스트>
그 상표의 냉면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마트에선 무슨 영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먹고싶을 때마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산다. 옛날 먹던 바로 그 맛이다. 요즘 마트에서는 식품대기업에서 더 그럴 듯하게 ‘파는 냉면’처럼 촉촉한 메밀면을 뽑아 만든 이른바 생면이 팔린다. 내가 먹는 마른 면보다 훨씬 고급 면이고 맛도 괜찮다. 그런데도 나는 여름이면 그 마른 면에 가루스프 들어 있던 저렴한 냉면이 더 생각난다. 음식은 추억이란 말은 그래서 옳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