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장석주 시인
2023년 08월 28일(월) 20:30 가가
“글쓰기에 사로잡힌 내 운명을 사랑한다”
나를 단련한 것은 책이고 위기 때마다 일으켜 세운 것도 책
오로지 읽고 쓰는 문장 노동자의 삶…30년간 110여권 출간
필생 업적으로 해야 할 한가지는 물결의 책 한권을 쓰는 일
나를 단련한 것은 책이고 위기 때마다 일으켜 세운 것도 책
오로지 읽고 쓰는 문장 노동자의 삶…30년간 110여권 출간
필생 업적으로 해야 할 한가지는 물결의 책 한권을 쓰는 일
“내 삶은 다른 세상을 꿈꾸며 읽은 것과 쓴 것의 누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쓴 것과 쓰지 못한 것 사이에 있다.”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68)는 자신의 인생을 “읽고 썼다. 그리고 살았다”라는 단문 두 개로 표현한다. 데뷔한 1975년부터 48년 동안 시집을 비롯해 시적인 직관과 인문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110여권의 책을 냈다. 최근 인문에세이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현암사)를 펴낸 시인을 경기도 파주출판단지에서 만났다.
◇30년을 읽고, 쓰는 ‘문장 노동가’로 살아=“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나를 단련한 것은 책이고, 인생의 위기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책이다”
장석주 시인은 신간에 실린 에세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에서 “나는 ‘책 읽는 인간’으로 일관하며 살아온 것을 기꺼워한다”고 묘사한다. 신간에는 시인이 ‘책과 함께 한 삶’속에서 관찰하고, 사유한 98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시인은 전업 작가로 들어선 1993년부터 꼬박 30년을 ‘문장 노동자’ ‘인문학 저술가’로 살고 있다. 약속장소인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지지향’(紙之鄕)내 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장석주·박연준 시인 부부가 먼저 나와 있었다. 시인은 출판사에 보낼 새 책 교정지를 살피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책에서 읽은 바로는 하루 8시간씩 책을 읽고, 4시간씩 글을 쓴다며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문장 노동자’로 표현하셨습니다. 요즘 일과는 어떠신가요?
“이것도 조금 달라졌어요. ‘코로나 팬데믹’ 이전, 한 5년 전까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점심때까지 읽고 쓰는 일을 했어요. 점심을 먹고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나가서 오전에 쓰던 것들을 다시 읽고 퇴고해요. 그리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자요. 하루에 8시간씩 읽고 쓰는 일을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걸 반으로 줄였어요. 4시간만 일을 해요. (그전보다) 조금 더 느슨하게 보내는 편이죠. 아무래도 이제 나이가 들고, 밀도 있게 일을 하기가 좀 힘들죠. 그전에는 정말 죽기 살기로, 생존을 위해서 했어요. 지금은 조금 여유도 생겼으니까 읽고 쓰는 그 패턴을 계속 보고 있죠. 간혹 황인용 선생님이 하는 헤이리 ‘카메라타’(CAMERATA)에서 고전음악을 듣고 올 때도 있습니다.”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책머리에 “동유럽 국가에서 태어나 파리를 떠돌던 에밀 시오랑을 읽는 내내 근심은 탕약처럼 졸아들고, 얼굴엔 가벼운 미소가 번지는 행복한 오후를 꿈꾸는 것이다”라고 쓰셨습니다. 신간에는 시인님이 젊은 시절 마음을 빼앗겼던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1911~1995)을 비롯해 책읽기와 산책, 음악, 바둑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려 하셨나요?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에 파리로 와서 평생을 살았는데 소위 염세주의 철학자죠. 이번 책은 거의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고립과 유폐된 생활 속에서 쓴 글들을 모은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잃어버린 상태죠. 그런 속에서 저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어떤 암울함 같은 것을 느꼈고, 그러면서 에밀 시오랑의 철학이 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이 책은 ‘에밀 시오랑’에 관한 책이 아니고,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에 관한 책이에요. ‘오후’는 제 생(生)의 시간에 대한 메타포(은유)입니다. 그 안에서 뭔가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신문 칼럼과 에세이 소재를 자연 속에서 많이 찾으시던데 어떤 것에 중점을 두시나요?
“결국 인간의 행복, 자연과 인간의 공존문제, 기후재난이라든지 인류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위기, 과학과 기술의 문제입니다. 한 달에 여섯 번을 씁니다. 동어(同語)반복하면 안되니까 소재 잡는 것이 어려워요. 늘 생각을 하고, 관찰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그때그때 나오는 새로운 문제들, 그 다음에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불이(不二)”=시인은 “책읽기는 자신의 우주를 확장해 나가는 행위”이며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불이(不二)”라고 말한다. 책읽기가 ‘input’이라면 글쓰기는 ‘output’이다. 많은 책을 읽음으로써 사유하는 힘을 얻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나를 살리는 글쓰기-전업 작가는 왜 쉼 없이 글을 쓰는가’(2018년)에서 ‘글쓰기에 사로잡힌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은 책을 쓰는 일이고, 그래서 책을 써왔다. 인생의 상당부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쓴 책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없지만 글쓰기에 내재된 고독과 고통을 지복(至福)삼아 여기까지 온 것은 뿌듯한 바가 없지 않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글쓰기에 사로잡힌 내 운명을 사랑한다.”
시인은 20살이던 1975년 ‘월간 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심야’로 문단에 나왔다. 이어 4년 후인 1979년 조선일보에 시(‘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존재와 초월-정현종 론’)이 동시에 당선됐다. 1983년 출판사를 창업해 ‘카잔차키스 전집’(10권) 등 자신만의 책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중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1992년 10월, 검찰이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하며 필자인 마 교수와 발행인인 시인을 구속했다. 두 사람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두 달 만에 석방됐다. 이후 시인은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가서 한 달간 머물며 고심하다 출판을 접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뜻하지 않은 필화 사건이 ‘인생의 변곡점’됐다. 출판계에 15년 동안 발을 들였던 시인은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섰다.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 인생의 변곡점=시인은 자신의 40대를 ‘좌절과 변화의 시기’라고 표현한다. 40대 중반 나이에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경기도 안성시로 이사한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자’와 ‘장자’, ‘논어’, ‘니체’를 무작정 읽기 시작했고, 이런 담금질 속에서 오로지 읽고, 쓰는 ‘문장 노동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시인은 지금까지 11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 노자와 장자, 니체를 비롯해 책읽기, 글쓰기, 가곡, 바둑, 소설가 하루키, 시인 이상, 색채, 은유, 사물, 고독 등 다채로운 테마로 책을 썼다.
안성에서 시세계 또한 달라졌다. 시인은 “이전 시집들을 메마른 콘크리트 감성이 지배했다면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2002년) 등 ‘안성 3부작’에는 식물적 감성, 그늘과 여린 것들에 대한 자애, 자연의 관능성에서 나온 활발함이 두드러진다. 내안의 촉기가 풍성해진 결과일 것이다”고 자평한다.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2021년)에는 138개의 짤막한 시론(詩論)이 실려 있다. 그중 ‘사자 새끼가 사자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시다’와 ‘시마(詩魔)없이 시를 쓰겠다.… 질박한 몇 줄의 언어를 얻겠다’는 글귀가 긴 여운을 남긴다.
안성에 머무르던 때, 시인은 매년 봄철마다 안성 5일장에서 관상수와 유실수를 사다가 집 주변 밭에 심었다. 어느 해 가을 대추나무가 처음으로 7~8알의 붉은 열매를 맺었다. 그걸 보고 무심히 지은 8행의 ‘대추 한 알’은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올려지며 대중들의 열띤 사랑을 받았다.
시인은 헝가리 시인 아탈리 요제프의 시 ‘일곱 번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언어의 부름을 받아 시를 쓰고, 제 영혼을 온전하게 책임지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유는 고매하고, 생활은 단순하게’를 생활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제 내가 필생의 업적으로 해야 할 한 가지는 물의 책, 물결의 책을 한권 쓰는 일이다.”
시인은 ‘마흔의 서재’(2020년)를 통해 ‘삶의 숙고를 담은 단 한권의 마지막 책’을 쓰겠다는 미래의 소망을 밝힌다. 독자에서 출판 편집자로, 다시 저자로 나선 시인의 무한한 사유와 창작을 기대한다.
/글=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장석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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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은 신간에 실린 에세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에서 “나는 ‘책 읽는 인간’으로 일관하며 살아온 것을 기꺼워한다”고 묘사한다. 신간에는 시인이 ‘책과 함께 한 삶’속에서 관찰하고, 사유한 98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시인은 전업 작가로 들어선 1993년부터 꼬박 30년을 ‘문장 노동자’ ‘인문학 저술가’로 살고 있다. 약속장소인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지지향’(紙之鄕)내 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장석주·박연준 시인 부부가 먼저 나와 있었다. 시인은 출판사에 보낼 새 책 교정지를 살피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이것도 조금 달라졌어요. ‘코로나 팬데믹’ 이전, 한 5년 전까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점심때까지 읽고 쓰는 일을 했어요. 점심을 먹고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나가서 오전에 쓰던 것들을 다시 읽고 퇴고해요. 그리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자요. 하루에 8시간씩 읽고 쓰는 일을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걸 반으로 줄였어요. 4시간만 일을 해요. (그전보다) 조금 더 느슨하게 보내는 편이죠. 아무래도 이제 나이가 들고, 밀도 있게 일을 하기가 좀 힘들죠. 그전에는 정말 죽기 살기로, 생존을 위해서 했어요. 지금은 조금 여유도 생겼으니까 읽고 쓰는 그 패턴을 계속 보고 있죠. 간혹 황인용 선생님이 하는 헤이리 ‘카메라타’(CAMERATA)에서 고전음악을 듣고 올 때도 있습니다.”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에 파리로 와서 평생을 살았는데 소위 염세주의 철학자죠. 이번 책은 거의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고립과 유폐된 생활 속에서 쓴 글들을 모은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잃어버린 상태죠. 그런 속에서 저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어떤 암울함 같은 것을 느꼈고, 그러면서 에밀 시오랑의 철학이 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이 책은 ‘에밀 시오랑’에 관한 책이 아니고,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에 관한 책이에요. ‘오후’는 제 생(生)의 시간에 대한 메타포(은유)입니다. 그 안에서 뭔가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신문 칼럼과 에세이 소재를 자연 속에서 많이 찾으시던데 어떤 것에 중점을 두시나요?
“결국 인간의 행복, 자연과 인간의 공존문제, 기후재난이라든지 인류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위기, 과학과 기술의 문제입니다. 한 달에 여섯 번을 씁니다. 동어(同語)반복하면 안되니까 소재 잡는 것이 어려워요. 늘 생각을 하고, 관찰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그때그때 나오는 새로운 문제들, 그 다음에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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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이 출판사에 보낼 새 책 교정지를 살피고 있다. |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은 책을 쓰는 일이고, 그래서 책을 써왔다. 인생의 상당부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쓴 책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없지만 글쓰기에 내재된 고독과 고통을 지복(至福)삼아 여기까지 온 것은 뿌듯한 바가 없지 않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글쓰기에 사로잡힌 내 운명을 사랑한다.”
시인은 20살이던 1975년 ‘월간 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심야’로 문단에 나왔다. 이어 4년 후인 1979년 조선일보에 시(‘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존재와 초월-정현종 론’)이 동시에 당선됐다. 1983년 출판사를 창업해 ‘카잔차키스 전집’(10권) 등 자신만의 책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중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1992년 10월, 검찰이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하며 필자인 마 교수와 발행인인 시인을 구속했다. 두 사람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두 달 만에 석방됐다. 이후 시인은 곧바로 제주도로 내려가서 한 달간 머물며 고심하다 출판을 접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뜻하지 않은 필화 사건이 ‘인생의 변곡점’됐다. 출판계에 15년 동안 발을 들였던 시인은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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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인협회 여행 중에 김종해(가운데) 시인, 박건한(오른쪽) 시인과 함께 한 장석주 시인. |
안성에서 시세계 또한 달라졌다. 시인은 “이전 시집들을 메마른 콘크리트 감성이 지배했다면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2002년) 등 ‘안성 3부작’에는 식물적 감성, 그늘과 여린 것들에 대한 자애, 자연의 관능성에서 나온 활발함이 두드러진다. 내안의 촉기가 풍성해진 결과일 것이다”고 자평한다.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2021년)에는 138개의 짤막한 시론(詩論)이 실려 있다. 그중 ‘사자 새끼가 사자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시다’와 ‘시마(詩魔)없이 시를 쓰겠다.… 질박한 몇 줄의 언어를 얻겠다’는 글귀가 긴 여운을 남긴다.
안성에 머무르던 때, 시인은 매년 봄철마다 안성 5일장에서 관상수와 유실수를 사다가 집 주변 밭에 심었다. 어느 해 가을 대추나무가 처음으로 7~8알의 붉은 열매를 맺었다. 그걸 보고 무심히 지은 8행의 ‘대추 한 알’은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올려지며 대중들의 열띤 사랑을 받았다.
시인은 헝가리 시인 아탈리 요제프의 시 ‘일곱 번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언어의 부름을 받아 시를 쓰고, 제 영혼을 온전하게 책임지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유는 고매하고, 생활은 단순하게’를 생활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제 내가 필생의 업적으로 해야 할 한 가지는 물의 책, 물결의 책을 한권 쓰는 일이다.”
시인은 ‘마흔의 서재’(2020년)를 통해 ‘삶의 숙고를 담은 단 한권의 마지막 책’을 쓰겠다는 미래의 소망을 밝힌다. 독자에서 출판 편집자로, 다시 저자로 나선 시인의 무한한 사유와 창작을 기대한다.
/글=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장석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