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금낭화를 만나는 행운
2023년 05월 11일(목) 00:00 가가
프랑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불로뉴 숲에서 이 글을 쓴다. 어제는 숲의 북쪽에 위치한 바가뗄 공원, 오늘은 남쪽의 오뙤이 온실에 다녀왔다. 루이 15세 시절 지어진 오뙤이 온실에는 세계에서 수집한 선인장, 양치식물, 소철류, 난과 식물 그리고 몬스테라와 같은 관엽식물들이 식재되어 있으며, 온실 앞 프랑스식 정원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원산의 식물도 있다.
내가 온실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정원 한 구역에 모여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게 눈에 띄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갔을 때 모두의 시선 끝에는 금낭화가 있었다.
사실 나는 금낭화의 존재보다는 이 식물을 향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놀라웠다. 금낭화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식물이다. 파리에 오기 직전까지 한국의 화단, 정원에서 금낭화를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에게 금낭화는 저 먼 아시아의 식물, 특별하고 희귀한 형태의 풀로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프랑스에 자생하는 고산 식물을 신기해하듯이 말이다.
금낭화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아시아의 식물이 이곳 프랑스 정원에 오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원예가 로버트 포춘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차 재배 기술을 훔친 산업 스파이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중국에서 훔친 차나무 재배 기술로 영국은 인도에서 차 산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는 차 재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중국인으로 위장까지 한 걸로 알려진다.
그가 중국에서 가져간 것은 차 재배 기술만은 아니었다. 유럽 정원에 심을 중국 자생 식물을 수집했고, 그중에는 금낭화가 있었다. 그의 노력은 쇠고비, 좀사철나무, 중국남천, 구골목서, 무늬사사, 운금만병초, 당종려 등의 학명에 새겨진 ‘fortunei’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금낭화’는 복주머니와 비슷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4월 긴 꽃줄기에서 열 개 이상의 분홍색 꽃이 피어난다. 서양에서는 이 꽃이 피를 흘리는 심장과 같다고 ‘블리딩 하트’라는 영명으로 부른다. 금낭화 꽃은 본래 분홍색이지만 다홍색 꽃, 흰 꽃을 피우는 품종도 볼 수 있다. 오뙤이 공원에서 만난 금낭화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홍색 꽃이었다.
정원의 금낭화 한 개체와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완주 대아수목원에서 만났던 너른 금낭화 군락을 떠올렸다. 수많은 개체가 금낭화 꽃밭을 이루는 곳. 그러나 그곳에서 동료들은 금낭화를 보고 이토록 감동하진 않았다. ‘금낭화쯤은 흔하니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상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일상에서 함께 했던 한국의 자생 식물을 떠올리고 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는 독일 뮌헨식물원에서 분꽃나무를 만났다. 원내 중심에서 떨어진 들에는 분꽃나무 한 그루와 이름표가 걸려 있었고, 이름표에는 ‘코리아, 재팬’이라는 원산지명이 쓰여 있었다. 나는 분꽃나무 향기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 댔다. 한국에서는 백 미터 밖 거리에서도 향이 강하게 났으나, 아무리 꽃에 가까이 다가가도 이 분꽃나무에서는 향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담당자에게 물으니 본인은 내가 설명하는 분꽃나무의 진한 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다며, 식물의 향기 강도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곳 개체는 자생지인 한국의 것보다 향이 옅게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순간 한국에서 내게 진한 꽃 향을 전해준 분꽃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떠올랐다.
재배 식물의 보고인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사람들, 희귀한 호주 식물들을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호주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누리는 일상 속 자연으로 받은 혜택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은 채.
내가 한국에 갈 즈음엔 금낭화의 꽃이 다 지고 난 뒤겠지만 앞으로 드러낼 잎과 열매, 씨앗을 만날 일이 아직 남아 있다. 금낭화의 꽃이 진 자리에는 검은 씨앗이 들어 있는 녹색 열매가 자라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은 곧 우리 곁 식물의 생애를 보는 행운을 갖는 것임을 한 번 깨닫는다.
<식물 세물화가>
사실 나는 금낭화의 존재보다는 이 식물을 향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놀라웠다. 금낭화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식물이다. 파리에 오기 직전까지 한국의 화단, 정원에서 금낭화를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에게 금낭화는 저 먼 아시아의 식물, 특별하고 희귀한 형태의 풀로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프랑스에 자생하는 고산 식물을 신기해하듯이 말이다.
금낭화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아시아의 식물이 이곳 프랑스 정원에 오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원예가 로버트 포춘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차 재배 기술을 훔친 산업 스파이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중국에서 훔친 차나무 재배 기술로 영국은 인도에서 차 산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는 차 재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중국인으로 위장까지 한 걸로 알려진다.
정원의 금낭화 한 개체와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완주 대아수목원에서 만났던 너른 금낭화 군락을 떠올렸다. 수많은 개체가 금낭화 꽃밭을 이루는 곳. 그러나 그곳에서 동료들은 금낭화를 보고 이토록 감동하진 않았다. ‘금낭화쯤은 흔하니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상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일상에서 함께 했던 한국의 자생 식물을 떠올리고 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는 독일 뮌헨식물원에서 분꽃나무를 만났다. 원내 중심에서 떨어진 들에는 분꽃나무 한 그루와 이름표가 걸려 있었고, 이름표에는 ‘코리아, 재팬’이라는 원산지명이 쓰여 있었다. 나는 분꽃나무 향기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 댔다. 한국에서는 백 미터 밖 거리에서도 향이 강하게 났으나, 아무리 꽃에 가까이 다가가도 이 분꽃나무에서는 향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담당자에게 물으니 본인은 내가 설명하는 분꽃나무의 진한 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다며, 식물의 향기 강도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곳 개체는 자생지인 한국의 것보다 향이 옅게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순간 한국에서 내게 진한 꽃 향을 전해준 분꽃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떠올랐다.
재배 식물의 보고인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사람들, 희귀한 호주 식물들을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호주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누리는 일상 속 자연으로 받은 혜택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은 채.
내가 한국에 갈 즈음엔 금낭화의 꽃이 다 지고 난 뒤겠지만 앞으로 드러낼 잎과 열매, 씨앗을 만날 일이 아직 남아 있다. 금낭화의 꽃이 진 자리에는 검은 씨앗이 들어 있는 녹색 열매가 자라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은 곧 우리 곁 식물의 생애를 보는 행운을 갖는 것임을 한 번 깨닫는다.
<식물 세물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