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김미은 문화부장·편집부국장
2022년 12월 28일(수) 00:45
지난 10월 모 후보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A씨가 SNS에 올린 글의 주인공이 화제였다. A씨에 따르면 그 주인공은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깨알 지식을 자랑한다. 다른 사람 조언은 듣지 않는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낸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다”. A씨가 본 주인공은 그런 사람이다.

A씨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항우본기’(項羽本紀)의 한 구절 “자긍공벌(自矜功伐: 스스로 공을 자랑하고), 분기사지이불사고(奮其私智而不師古: 그 자신의 지혜만 믿었지 옛 것을 본받지 않는다)”도 인용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고 썼다. 많은 이들이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최재천 교수와 강기정 시장

기사를 보며 그즈음 읽었던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재미 언론인 안희경과 문답식으로 펴낸 ‘최재천의 공부-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장 재직 시절 이야기.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터라 “상대가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재주가 조금 있다”는 그가 생태원 경영자로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며 그 요인으로 꼽은 게 있다. 바로 ‘이를 악물고 들었던 것’이다. 경영 십계명 중 하나로 삼은 생각인데, ‘어떤 일’을 경험하면서 더욱 철저하게 지켜나갔다.

국립생태원이 준비한 전시 개막이 3주 정도 남았을 때였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준비해 놓은 전시 구성이 아쉬웠던 그는 “시간이 촉박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 보면 어떠냐”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며칠 후 회의 시간, 직원들은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을 다 버리고 최 교수가 말한 내용을 가져왔다. “아니, 그동안 논의하셨던 내용은 다 어디 갔어요?”라 물었더니 “원장님 말씀이 가장 좋아 보여서 그 방향으로 잡았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차 싶었다.

“조직의 리더가 되면 말이 많아집니다. 다들 잘 들으니까요. 그런데 리더가 입을 열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집단지성을 이루고 창의성을 끌어내려면 리더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이번에는 최근 본예산 2000억 원 삭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광주시와 광주시의회의 싸움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강기정 광주시장과 광주시의회의 싸움이겠다.

유례없는 예산안 삭감을 놓고 양쪽의 설전이 벌어졌다. 강 시장이 “이번 사태는 의회의 예산권 남용이자 화풀이식 예산 삭감”이라 말하자, 의회는 “강 시장의 독선과 아집이 부른 참사”라고 맞받아쳤다. 시민단체 참여자치 21은 ‘노회한 정치인’ ‘봉건시대 군주’라는 단어를 쓰며 “시의원들이 광주시민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준다고 울분을 토하는 것은 리더의 마인드가 아니다”라며 강시장을 비판했다.

행정 경험이 없는 강 시장의 강점은 오랜 정치인 생활에서 갈고 닦은 정무 감각일 터다. 하지만 요즘 광주시청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모습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강 시장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과 관련해 시장을 만났던 한 인사는 그의 다소 ‘공격적인’ 대화 방식이 놀라웠다는 말을 전해 주기도 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고사하고, 측근들조차 제대로 의견 개진을 할 수 없다는 말도 들린다. 이것은 정말 큰일이다. 그들이 자기 검열에 빠져 주춤거리고, 시장의 눈치를 보며 평판이나 의견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그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어등산 문제나 군 공항처럼 광주가 풀어야 할 숙제는 해답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공약 사항 역시 잘 따져 보아야 한다. 밀어붙이기식 일방통행과 고집을, 추진력과 그 추진력을 견인하는 소신으로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마음 열어 다른 의견 듣는 새해로

사실, 일상을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써 내려간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 같다. 오프라인에서는 마음에 맞는 사람만 만난다. 예전에는 수많은 정보가 흘러 다니는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마주했다면, 언젠가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듣고 싶은, 우리 편’ 이야기만 줄곧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확증편향은 점점 더 심해지고, 남의 이야기에 좀체 귀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등장하는 선우용녀는 곤란한 상황이 되면 “아, 몰라 몰라 몰라” 하며 상대방의 말을 무질러 버린다. 우연히 어떤 드라마를 보다 이런 대사를 만났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낮잡아 본다” 괴테의 말이라는데, 왠지 뜨끔해졌다.

어금니를 꽉 깨물지는 않더라도, 내가 말하기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특히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의 말을 마음을 열고 듣는 것.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새해를 앞두고 다짐해 보는 일이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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