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아침 신문을 보며-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06월 19일(일) 22:00
문을 열면 성긋이 앉아 있다. 마늘각시 대하듯 아침 손님을 모신다. 방 가운데 펼치면 익숙한 잉크 향기가 묵은 김치나 청국장처럼 은은하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 수고로움을 거쳐 온 손님, 집 앞까지 가져다 준 이의 고마운 마음에 감사부터 한다. 신문이 오는 것은 사건만 오는 게 아니라, 세상이 오고 사랑까지 덤으로 온다. 많은 일 중에 선택된 사건만이 밤새 기자들이 입혀준 고운 옷을 입고 하나의 작품이 되어 오는 것이다.

매일 새롭게 오는 손님이니 정중히 모시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 신부 대하듯 귀중하게 방 가운데 펼쳐 세세히 살핀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난 보통 한 신문을 세 번 정도 본다. 먼저, 처음부터 끝장까지 머리기사와 사진을 중심으로 빠르게 훑어본다. 큰 물줄기를 보고 물의 흐름과 물색의 변화를 읽는다. 그리고 흥미로운 기사 몇 편을 낚아 출근 전에 읽는다. 사회면이나 문화면이다. 주로 뒷면부터 앞면으로 신문을 보는, 거꾸로 읽는 편인데, 이는 아침부터 티격태격 싸운 정치 기사로 아침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주요 내용 중 좋은 기사나 사설 몇 편은 스크랩한다.

수집한 자료는 쉬는 시간에 짬짬이 읽는다. 두 번째 신문 보기다. 세상에 대한 철학적 학문적 그리고 인문학적 탐구 기사를 읽는 전공 학습 시간이자 본격적인 독서 시간이다. 지역에서 일어난 작은 일들 중심으로 어디에 행사가 있고 또 누가 싸웠는지 등 반복되는 작은 일상들이다. 승진 인사와 궂긴 소식도 이때 접한다. 누군가 승진해서 펼치는 포부나 갑자기 생을 놓은 이의 소식은 단 몇 줄이지만 책 한 권보다 무겁다.

세 번째는 스크랩한 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짯짯이 살핀다. 몇 번 반복해서 읽거나 며칠 후에 읽으면 신문 조각은 너덜너덜해지거나 심지어 찢어진다. 그런데도 속독했을 때와 달리 그때야 깊은 글맛이 나고, 기자의 깊은 속뜻을 읽을 때가 많다. 무엇보다 놓치기 쉬운 행간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세 번째 읽는 법은 간혹 내가 생각해도 좀 지나치다고 여겨지지만, 오랫동안 기다렸다 만난 애인만큼이나 읽는 재미가 있다.

신문을 읽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 문득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반복된 비슷한 기사 같지만 실상 우리 인생이 이런 일들의 반복이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남들과 섞여 살아가는 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이므로 그 일이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건을 읽을 때마다 나와 대입해 보거나 내 삶을 반추해 보며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신문을 통해 세상을 내 것으로 수용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직접 뛰어다니며 세상을 탐험하기도 하고 일부러 거리를 두고 묵묵히 살아가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접한다. 하지만 내가 신문을 통해 세상을 읽는 것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보면 나를 잃고 내가 없기 쉬운데, 반면에 신문은 내 시선에 따라 세상을 해독하고 나를 찾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문은 정보가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내용도 논리적이어서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 가장 쉽고도 재미있게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신문 읽기이다. 덤으로 신문에는 세상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보는 기자들의 독특하고 섬세한 렌즈, 글을 전개하는 방법과 문체는 물론 기자의 재치도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신문을 보면 편협한 내 시선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나를 읽을 수 있다. 신문은 어제의 일을 통해 오늘의 길을 안내하는 지도 같은 것, 세상만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덤으로 내 모습까지 반추해 주는 거울, 그래서 아침 신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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