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보며-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03월 04일(금) 04:00 가가
뉴스에 오르내리는 매우 낯익은 지명들, ‘키에프’(키이우) ‘오데사’. 고등학교 시절, 장식용으로 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두툼한 세계문학전집에 자주 등장하던 이름들이다. 세월이 더 지나, 영화에 재미를 붙이면서 역시 자주 접한 지명들이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이들 도시를 향한 친근함은 아마도 청소년기에 매우 자의적으로 형성된 이미지 때문이리라. 이런 친근함 때문인지 키에프가 침공받고 있다는 뉴스를 보자니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가 우크라니아를 두고 ‘마지막 유럽’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자의적인 친근함에 보태어 ‘마지막 유럽’이라는 상당히 감성적인 표현이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 더불어 푸틴은 ‘악의 화신’, 히틀러를 방불게 하는 독재자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세계문학전집에 등장하던 ‘~코바’ ‘~ 일이치’ 같은 매우 이국적인 이름들, 리넨 같은 상상조차 힘들었던 매우 생경한 소품들, 특히 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하던 축축하고 춥고 어둡고 지저분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와 방들. 청소년기에 형성된 이런 단편적인 몇몇 인상들이 오늘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한 사람의 내면에 형성된 가치관, 견해, 입장, 넓게 보아 사상은 어쩌면 그것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문장들에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전면적으로 침공하던 20여 년 전의 일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날, 이라크의 모습을 담은 뉴스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자는 한 결혼식장의 모습을 보여 주며, 하객들을 인터뷰했다. 하객들은 비록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오늘의 일상을 소중히 하겠노라고 말했다. 한껏 상기되어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결혼식장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일상은 우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이라크, 특히 바그다드가 불바다가 되었고, 미국의 언론은 대공습이 벌어지는 바그다드의 밤하늘과 항공모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게임 하듯 목표만 콕 찍어 명중시키는 전투기의 공습 등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전 세계로 중계했다.
30대 초반 내내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바로 ‘일상’이었다.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온 나에게 ‘일상’은 왠지 적응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내내 나는 나만의 전쟁터에 있었다.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일상이 희생되고 개인이 무시되는 삶은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 위해 오로지 전투에 몰입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처럼, 나는 별다른 자극이라곤 없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30대 초반의 삶은, 그래서 지지부진하고 공허하게만 다가왔다.
침공하는 자들이 미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었고, 일상이 처참하게 파괴당한 민중들은 이라크인에서 우크라이나인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언론이 전하는 스펙터클함이나 생생함은 과거 이라크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2000년대 초반의 이라크인들, 지금의 우크라이나인들은 30대의 나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다. 평온하고 따분하던 일상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가 삶을 좌우한다. 전쟁은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따분하고 단조롭고 지지부진하고 짜증투성이일지라도 ‘일상’은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삶을 일컫는 단어다.
전쟁의 포화 속에 내던져진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살고 싶다고 절규한다. 그 아이에게 인터뷰하고 또 그 모습을 찍는 기자의 직업적인 잔인함이 화면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 온다.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역사는 발전한다”는 테제는 자본주의가 세상 모르고 철부지처럼 날뛰던 시절에 했던 치기 어린 생각임을 알아 차린 지 이미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엔 근거 없는 희망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세상은 점점 더 좋아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 말이다. 우리들의 소중하고도 보잘것없는 일상이 내게 그렇게 호소하고 있다.
긴 겨울 가뭄을 종식시키는 봄비가 부드럽게 내리고 있다. 부디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과 알라의 축복이 우크라이나 민중과 함께 하기를.
30대 초반 내내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바로 ‘일상’이었다.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온 나에게 ‘일상’은 왠지 적응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내내 나는 나만의 전쟁터에 있었다.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일상이 희생되고 개인이 무시되는 삶은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 위해 오로지 전투에 몰입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처럼, 나는 별다른 자극이라곤 없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30대 초반의 삶은, 그래서 지지부진하고 공허하게만 다가왔다.
침공하는 자들이 미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었고, 일상이 처참하게 파괴당한 민중들은 이라크인에서 우크라이나인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언론이 전하는 스펙터클함이나 생생함은 과거 이라크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2000년대 초반의 이라크인들, 지금의 우크라이나인들은 30대의 나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다. 평온하고 따분하던 일상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가 삶을 좌우한다. 전쟁은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따분하고 단조롭고 지지부진하고 짜증투성이일지라도 ‘일상’은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삶을 일컫는 단어다.
전쟁의 포화 속에 내던져진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살고 싶다고 절규한다. 그 아이에게 인터뷰하고 또 그 모습을 찍는 기자의 직업적인 잔인함이 화면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 온다.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역사는 발전한다”는 테제는 자본주의가 세상 모르고 철부지처럼 날뛰던 시절에 했던 치기 어린 생각임을 알아 차린 지 이미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엔 근거 없는 희망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세상은 점점 더 좋아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 말이다. 우리들의 소중하고도 보잘것없는 일상이 내게 그렇게 호소하고 있다.
긴 겨울 가뭄을 종식시키는 봄비가 부드럽게 내리고 있다. 부디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과 알라의 축복이 우크라이나 민중과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