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4대 종교를 품은 순례의 성지, 영광
2025년 08월 07일(목) 18:20
남도 체험로드 Yeonggwang Spot
4대 종교를 품은 순례의 성지, 영광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내 탑원. <최현배 기자>

‘성스러운 빛의 고장’ 영광은 4대 종교 성지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영광은 기독교와 천주교인들의 가슴시린 순교 역사가 있고,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탄생지이자 백제에 불교가 최초로 도래한 곳이다. 종교인들은 물론 비종교인들에게도 한번쯤 다녀와야 할 ‘순례의 성지’로 꼽힌다.

◇불교 :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법성포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시절 인도 간다라국의 고승 마라난타가 중국 돈황과 장안, 남경을 거쳐 드넓은 바다를 따라 영광 법성포에 도착했다. 한국 불교의 첫 장이 시작된 이곳 영광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로, ‘아미타불’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를 담아 법성포라고 불리게 됐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탐방승강기에서 내리면 영광대교가 마주보이는 넓은 대지 위에 우뚝 선 거대한 사면대불상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사면대불상에는 간다라 양식으로 지어진 높이 23.7m의 사면대불이 세워져 있다. 현재는 일부 공사 중으로 출입이 어렵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사면대불상과 부용루. <최현배 기자>
불탑과 감실형 불당(불상과 소탑을 봉안하는 감실)으로 구성된 탑원은 간다라 사원 유구 중 탁트히바히 사원 주탑원을 본떠 만든 것으로, 고대 간다라 지역 사원의 대표적인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또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를 조각해 놓은 간다라 양식 불전도 부조 조각을 볼 수 있는 참배를 위한 누각 부용루(芙蓉樓)도 눈에 띈다.

바로 옆 간다라 유물관에는 간다라 2~5세기 불전도 부조와 고대 불상 등이 진품으로 전시돼 있다. 안내데스크의 해설사들을 통해 보다 자세한 설명도 들어볼 수 있다.

원기 3년(1918년)에 건립한 원불교 최초의 교당인 영산원. <최현배 기자>
◇원불교 : 소태산 태종사 깨달음 얻은 영산성지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는 영광군 백수면에서 나고 자랐다. 박중빈 대종사는 1916년 노루목 대각터에서 깨달음을 얻고 원불교를 창립했다.

박중빈 대종사가 성장과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원불교를 창립한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일대는 ‘영산성지’로 불리운다. 종교적 체험을 위해 매년 수만 명의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원불교 5대 성지이자, ‘성보 제2호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뜻 깊은 공간이다.

이곳에는 박중빈 대종사의 탄생가와 기도터인 삼밭재 마당바위, 입정에 든 선진포 입정터, 노루목 대각터, 9인 제자가 기도를 올렸던 9인 기도봉, 영산원, 학원실 등 초기교단 건물이 있다. 또 원불교 성직자 양성학교인 영산선학대학교와 원불교 창립관 등이 이곳에 있다.

등록문화재 제481호 영광 원불교 영산 대각전 내부. <최현배 기자>
영산원은 원불교의 최초 교당이다. 1923년 옥녀봉 아래에 있던 구간도실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며 박중빈과 제자 9명이 함께 직접 건물을 세웠다. 이들은 방언공사를 통해 교당을 완공했고 이곳이 원불교 교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영모전은 박종빈 이하 역대 선령 열위 법은을 추모하며 향례를 올리는 곳으로 1980년 지어졌다. 4단의 제단이 조성돼 있으며 역대 선령들의 합동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6월 1일, 12월 1일 합동 향례가 치러진다.

영산대각전은 등록문화재 제481호로, 박중빈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성지에 세운 건물로 1936년 건립됐다.

염산교회 첨탑과 옛 예배당. <최현배 기자>
◇기독교 : 염산교회 77인 순교지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았던 1950년, 6·25 전쟁 당시 영광에서는 194명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다. 염산면 봉남리에 위치한 염산교회에서 전쟁 당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인민군에게 붙잡힌 염산교회 신도 77명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새끼줄에 포박된 채 돌을 달고 강물에 수장됐다. 그들은 변명도, 애원도 않고 기도하며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한국 기독교 순교사적지 제1호로 지정된 염산교회 옛 예배당은 2016년 복원돼 예배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에는 예배 단상과 60여 개의 의자, 기도할 수 있는 방석 등이 마련돼 있다.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기념관 내 조형물 ‘맞잡은 손’. <최현배 기자>
교회 앞 부지에는 순교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 내 순교자 합장묘에는 ‘이 땅의 영화로운 삶보다는 저 천국을 소망하여 믿음을 지키다가 수장 당하고 구덩이에 생매장 되고 죽창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으면서도 천국을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했다’는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염산교회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순교의 현장, 야월교회가 있다. ‘호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 선교사는 1903년 백석교회를 시작으로 영광에 6개의 교회를 세웠다. 야월교회는 1908년 4월 5일 건립됐다.

6·25 당시 공산당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65명의 야월교회의 모든 교인이 산채로 매장되거나 수장당했다.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기념관 앞에는 십자가 조각공원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천성을 향해’, ‘익투스 십자가’ 등 십자가를 주제로 한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또 전쟁 당시 교회의 첨탑이 그대로 보존 돼 있어 시간이 멈춰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면 야월교회와 염산교회, 영광대교회 등 영광에서 순교한 기독교인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기념관 전시는 한국 선교의 시작과 호남의 기독교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1층에는 2층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조형물 ‘맞잡은 손’이 설치돼 있고 2층에는 유시욱 작가의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 작품이 전시돼 있다. 2층에는 또 과거 한국에서 순교한 기독교인들의 사진이 걸려있어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평일 방문 시에는 최종한 원로장로의 해설을 통해 전쟁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영광 순교자 기념관 1층에 12인의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 ‘핏빛 사랑으로 진복(眞福)을 사신 영광의 순교자들’. <최현배 기자>
◇천주교 : 마을과 함께 숨쉬는 순교자 기념성당

영광은 1791년 신해박해 이전부터 천주교가 전파돼 신앙공동체가 일찍이 형성됐다.

영광군 영광읍에 위치한 영광성당은 신유박해(1801)와 병인박해(1866) 시기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순교자들의 삶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구조물은 ‘순교자 기념문’이다. 이 구조물은 순교자 4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치로, 네 개의 칼 모양 기둥이 중심을 이룬다. 이 기둥은 이화백, 오씨 양반, 김치명, 유문보 바오르 순교자 4명을 상징하고 있다. 기둥은 진리를 향하는 배의 돛과 만장을 의미하며 십자가는 조선시대 죄인의 형틀로 신자들이 감내했던 고통과 포기하지 않았던 신앙을 나타낸다.

양반 이화백과 복산리의 양반 오씨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당했고 김치명은 병인박해(1866~1873년) 때인 1867년 공주에서 교수형을, 유문보 바오르는 1872년 나주에서 옥사했다.

영광성당 내 영광 순교자기념관. <최현배 기자>
성당의 정문은 구전과 학술회의 등을 통해 이화백과 오씨가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참수당한 순교터로 추정되고 있다.

한켠에는 순교자 비석이 설치돼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 문양과 함께 4인의 순교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옆에는 수녀이자 시인인 이해인 수녀의 기도시 ‘핏빛 사랑으로’가 성체문양과 함께 시비로 조성돼 있다.

이러한 상징과 기억의 공간들이 모여 있는 영광성당은 2017년 5월 설립 80주년을 맞아 ‘영광순교자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은 6명의 순교자와 3명의 유배자, 초기교회 신자 2명의 삶을 조명하고 있으며 병인박해 때 순교한 875명의 행적이 적힌 ‘치명일기’ 고문서가 전시돼 있다.

/글=김다인·김창원 기자 kdi@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