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북구 풍향동에 위치한 ‘김민희 패션’. 이곳은 동네 할머니 10여명이 함께 모여 영화도 보고 시도 읽는 문화공간이자 사랑방이다. ‘김민희 패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희씨는 할머니들을 상대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는 문화기획자 같은 존재다.

고향인 대구를 떠나와 광주에서 약 20년간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자신만의 솜씨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할머니들의 리마인드 웨딩을 진행하고, 시를 함께 읽으며 지나온 삶을 나누는 모임 ‘들풀’을 결성해 모임을 이끌어나간다. 또 영화모임도 열어 최근에는 할머니들과 ‘수상한 그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정경희(여·29) 감독의 ‘징허게 이삐네’가 그것. 약 27분동안 펼쳐지는 영화는 최근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진행한 광주브랜드영화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다.

정경희 감독

서울에서 필름메이커, 다큐멘터리스트로 활동중인 정 감독은 “같이 일하는 동료인 김수현씨 덕분에 광주를 알게 돼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며 “김민희씨 딸이자 영화에도 출연하는 수현씨를 통해 할머니들이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 문화를 접했고 그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초 5·18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들의 리마인드 웨딩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내용의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30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80년 5월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아 할머니들의 특별하고도 일상적인 모습만을 담아냈다.

영화에는 강영자, 이순자, 박명자 할머니 등 약 20여명이 출연하며 촬영은 2019년 8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약 7개월 간 진행됐다.

“할머니들이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화제가 된 살롱문화와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들은 오래 전부터 그러한 문화를 이어오고 있었던 거죠. ‘들풀’ 활동을 통해 서로 공감하며 연대하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수다도 떠는 모습이 요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느껴졌어요.”

영화 제목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징하게도 이쁜 우리의 순간들은 오늘도 차곡차곡 쌓여간다”에서 따왔다. 리마인드 웨딩을 위해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할머니들이 예쁘다는 의미와 등장인물들이 함께 행복을 나누고 추억을 쌓아가는 순간들이 아름답다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영화에 유난히 많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바로 김민희 패션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부분이다. 정 감독이 특히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한 이 장면들은 음식을 나눠먹는 일상을 통해 주인공들의 성격과 생활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정 감독은 “영화 속에서 할머니들은 떡도 나눠먹고 김치도 나눠먹고 모든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다”며 “그저 음식을 나누는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와 함께 할머니들의 다양한 활동을 관객들이 보면서 에너지와 활력을 얻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TV외에는 즐길거리가 없는 노년의 삶이 무료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이러한 편견이 사라졌습니다. 할머니들한테는 요즘 청년들에겐 없는 공동체의 배려와 보살핌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도 이러한 연대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영화는 다음달 16일부터 열리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오월 시네마 프로젝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