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는 자리는 그녀가 바쁜 일과를 잠시 멈추고 앉아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바로 그 의자다. ‘때로 노동의 끝판은 울적하기도’해 소녀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글쓰기’를 통해 위안을 받는 자리다.

얼마 전 서점에서 우연히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글항아리)를 보게됐다. 30년 옥살이를 한 비전향 장기수 고(故)서옥렬 선생과 얽힌 사연이며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글마다 담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책 날개를 보니 함평 출신의 저자는 되고 싶었던 것은 소설가였고, 영특하다고 여기던 첫째 아이를 등굣길에 잃는 아픔을 겪었고, 책읽기 모임을 통해 위로를 얻었고, 2002년부터 회원 몇몇과 음식점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혜숙(여·67)씨였다. 음식점이 궁금했는데, 며칠 후 광주 운림동의 유명한 맛집 ‘데이지’란 사실을 알게됐다.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들을 갈무리해 펴낸 이번 책은 메이저 출판사인 문학동네 계열사 글항아리 관계자의 눈에 띄어 출간하게 됐다. 편집자가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1년간 지켜보다 책 출간을 권했다. 그는 바쁜 점심 시간이 지나면 문 앞 첫 번째 자리에 앉아 작은 키보드를 휴대전화에 연결해 틈틈이 글을 썼다. 책에 실린 80여편은 지난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쓴 글이다.

그녀는 광주여고 재학 시절부터 뭔가를 원고지에 썼고, 언제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혼해 4남매를 키웠고, 방송통신대 국문과에 편입해 잠시 다니기도 했다. 젊은 시절 광주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내 소망은 한낱 꿈이었겠거니 했지요. 한데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되니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롭고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 준 건 글쓰기였어요.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위로였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아이를 잃고 삶은 크게 흔들렸고, 이 때 늘 가까이 두던 책은 언제나 힘이 됐다. 이동도서관의 열혈 이용자였고, 광주학생독립운동 도서관에서 ‘글사랑 독서회’를 만들어 ‘숙제하듯이가 아니라 헐렁하게, 여러 사람과 즐겁게 대화하듯’ 책을 함께 읽었고 지금도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그녀 말처럼 ‘느닷없이’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4명이 의기투합해 식당 ‘데이지’를 오픈하게 된다. 이틀에 한번씩 서울에 다니며 레시피를 공부하고 함께한 동료들 덕분에 장사는 초창기부터 잘 됐고 돈도 꽤 벌었다. 현재 이씨는 운림동 가게를 운영중이며 봉선점과 일곡점은 동료들이 운영하고 있다.

“협소한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나와 식당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어요. 식당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지요. 제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여기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응원도 받고, 위로도 받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렇고 밥을 해서 서로 나누는 것은 소중한 일이죠. ‘밥 먹고 가라’ ‘밥은 먹었냐’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죠. 그래서 명절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정성을 담은 음식을 대접하는 데 보람을 느끼죠.”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 손님들을 비롯해 가부장적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어머니의 삶, ‘5·18 한복판에서 방관자로 살았다’는 고백 까지. 그녀는 지금 페이스북에 소설 ‘새말아짐’을 연재중이다. 어느 마을, 어느 시대나 있을 법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다.

인터뷰를 한 날은 그녀의 통장에 첫 인세가 들어온 날이었다. 그녀는 인세를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