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왜 17세기 교역 휩쓴 인삼의 역사를 숨겨 왔나
2020년 02월 28일(금) 00: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인삼의 세계사
설혜심 지음
프랑스 화학자 조프루아와 식물학자 드 가르소의 ‘79가지 식물에 대한 설명과 장점, 용도’에 소개된 진생(인삼·아래)과 닌진(당근), 18세기 이르러 유럽에서 전문화된 직업이 된 약사가 여성의 맥박을 재는 장면(아래). <휴머니스트 제공>
“‘인삼의 세계사’는 의약학의 성패가 의약적인 효능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좌우된다는 명제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과학이라고 불리는 제반 영역에도 문화적인 구별 짓기가 작동하며, 그런 구별 짓기의 심성은 이른바 ‘객관적인 실험 결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오늘날 거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균형 잡힌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인삼 같은 상품의 ‘사회적 삶’을 ‘약리작용’과 ‘현재적·상업적 효과’를 넘어 인문사회학, 특히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본문 중에서)

다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커피, 사탕수수, 면화와 더불어 17세기 교역 네트워크 중심을 이룬 세계상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몸보신 식물로 인식돼 있다. 바로 인삼이다. 삼계탕, 인삼주 등 음식과 술에까지 건강 기능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비단 인삼의 인기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에서도 우리나라 인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고려인삼이 유럽에 상륙해 서양인들을 사로잡은 것이 1617년이었다. 혹자는 ‘최초의 한류 상품’으로 인삼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7세기 동서양 교역을 휩쓴 슈퍼스타 인삼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펴낸 ‘인삼의 세계사’는 개성에서 런던, 매사추세츠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인삼의 여정을 조명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한 서양사학자의 집요하고 치밀한 연구 덕분에 세계 최초로 인삼의 세계사적 의미와 서구 학계의 편향에 반격을 기하는 탁월한 저작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평했다.

책은 각종 서양 문헌 속 인삼의 기록을 찾아내 세계사적 시각을 견지한다. 단순한 인삼의 역사가 아닌 서양과 인삼의 불편한 관계를 아우른다. 인삼의 존재를 복원하기 위한 열정은 역동적이면서도 다채롭다.

“의학 논고부터 약전, 동인도회사 보고서, 경제학 논고, 식물학서, 지리지, 여행기, 박물지, 신문기사, 서신, 사전, 소설, 시,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가 동원된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는 인삼이 동아시아 중심부와 유럽-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주변부의 이중구조 속에서 유통됐다고 본다. 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화기삼이 발견되면서 인삼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신생국가 미국은 화기삼을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문제는 상품 장악력이었다.

“수요를 결정하고 품질의 등급을 매기고 가격을 책정하는 모든 일이 수입국에 중국에 달려 있었다… 내다팔기에 급급한 물건이었던 인삼은 미국에서 내수용 상품이 될 수 없었다. 미국인들은 인삼을 제대로 경험하고 사용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서구 의학은 자신들의 지식체계에 인삼을 끌어들이기보다 효능을 폄하했다. 유효성분을 추출하지 못한 데다 약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같은 양상은 인삼을 ‘중국의 전유물’로 규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서구 나라들이 인삼을 재배하지만 이면에는 ‘열등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이 드리워져 있다.

세계적으로 인삼 연구는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더욱이 90% 이상이 효능을 밝히는 데 집중된 나머지 인문사회학적 연구는 미흡했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출신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도 동아시아 생산 인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저자의 목적은 간명하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인삼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있다. 그와 동시에 오늘의 비대칭적 인삼 연구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다. 또한 이를 통해 인삼이 서양 역사에서 은폐돼 왔던 배경을 서구 중심의 세계론에서 찾아내, 그 편향성에 ‘일침’을 가하는 데 있다.

<휴머니스트·2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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