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는 독립운동, 강제이주 등으로 러시아로 떠났던 우리 동포의 후손, 고려인 아이들로 구성된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박정연(47·도경건설 대표) 단장은 광산구 월곡동에 있는 고려인마을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 ‘아리랑’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인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겐 아픔이 많아요. 한국어를 잘 모르고, 교육에서도 소외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느낄 수 있고 우리 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지난 2018년 4월 창단한 이 악단은 고려인마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 자녀 22명으로 구성돼 있다. 5살 어린아이부터 중학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들은 임복희 예술감독, 첼리스트 김태은씨, 바이올리니스트 송희경씨 등에게 주 1~2회 무료 레슨을 받고 있다.

악단은 윤경미 나모문화재단 단장, 최영화 교수, 임복희 예술감독 등과 박 단장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도경건설이 악기와 운영비 등을 기부를 통해 제공했으며, 광주문화재단이 ‘무지개’ 사업을 통해 교육프로그램, 운영비, 간식비 등을 지원했다. 또 이학재 아로마라이프 회장 등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6기 회원들도 나서 기부금을 더하거나 각종 행사 비용, 케이크 등을 지원하며 도움을 줬다.

“저는 건설사 대표인 만큼, 음악을 전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처음엔 문화예술 전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담감도 있었어요. 주변 분들이 힘을 실어 줬습니다. 악단 또한 경영의 한 부분이며, 악단에 힘을 싣고 키워갈 수 있는 저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악단은 2차례에 걸쳐 음악회도 열었다. 2018년 12월 호남대학교 랄랄라극장에서 첫 공연을 열었던 악단은 지난달 28일 남구 사직동 빛고을아트스페이스에서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7곡을 무대에 올렸다.

“관람객이 ‘잘하지 못해도 틀리면서 맞춰가는 걸 들으며 가슴 속 뜨거운 마음이 생겼다’며 극찬해 주셨어요. 악보도 잘 못 읽고 외형적으로도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없지만,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도 굳센 의지를 잃지 않은 아이들이 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박 단장이 고려인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7년께부터다. 박 단장은 늘 ‘버는 만큼 기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건설사를 운영하며 매출이 생기자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기부처를 찾던 중, 역사적 의미는 물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곧바로 볼 수 있는 고려인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기부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단순히 금액으로 기부 사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아이들이 크는 걸 볼 수 있어 오히려 제가 감사한 일이에요.”

박 단장은 고려인마을과 협약을 맺고 매달 회사를 통해 지속적인 기부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2018년 10월 고려인마을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박 단장은 앞으로 더 많은 기부와 국가 지원사업, 재능기부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레슨과 이론 교육을 제공하고자 한다. 또 올해부터는 드럼이나 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를 추가로 제공하고, 고려인 예술학교를 통해 합창단, 연극단도 꾸려 나갈 계획이다.

“과거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도움 주신 고려인의 후손들, 강제 이주 등 고통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이들과 우리가 하나라는 마음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문화예술에, 사회에 몸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