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

‘두근두근 내 인생’, ‘비행운’, ‘바깥은 여름’의 저자 김애란이 한 시절의 고민과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을 산문집으로 묶었다. 지난 2002년 등단한 이후 17년 동안 기록해온 김애란 작가의 산문은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독특하고 개성이 있다.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른 이름도 적지 않고요. 이 책에는 그런 저의 한 시절과 무능 그리고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산문집에 실린 글은 뜨겁고 싱그러운 기운으로 넘쳐난다. 작가는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었던 소설가로서의 얼굴 너머 소녀로서의 얼굴, 아내로서의 얼굴, 시민으로서의 얼굴, 딸로서의 얼굴, 인간으로서의 얼굴 등 다양한 면모를 풀어낸다.

작가 자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때로 서러운 음색으로, 때로 구성진 입담으로 다가온다.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웅숭깊은 눈길이 특유의 구성진 언어와 만나 빚어지는 글은 알싸한 향기를 선사한다.

이번 산문집에는 타인과의 이해를 좀 더 곱씹어보게 하는 글들도 적지 않다. 나를 떠나와 멀리 가더라도, 끝내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톺아보아야 깨달을 수 있는 세상살이의 이치가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연피에 대한 단상은 그런 통찰이 담겨 있다.

“연필 쥔 손에 힘을 주면 책에 흐릿한 홈이 파인다. 그 홈에는 내가 어느 문장에 줄 그은 순간 느낀 시간과 감정이 고인다… 그 스침이 혹 꽃잎 한 장의 무게밖에 갖지 못한다 해도, 이야기의 이어달리기, 이야기의 배턴터치가 계속되길 빈다. 대부분 연필이 길고 둥근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열림원·1만3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