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해 많이 갖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많지요. 이사할 때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도 하구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집안을 어지럽히는 주범 중 하나가 ‘책’인 경우가 많을 터다. 책장과 책상을 넘어 이곳저곳 자리를 차지한 책들은 책 주인을 제외한 다른 가족에게는 그저 애물단지일지도 모른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가장 옮기기 힘들어 하는 물품도 책이 아닐는지.

그래서 고향 담양에 향토사 전문 책방 ‘이목구심서’를 오픈한 문화기획자 전고필 씨가 ‘장서가를 위한 도서 보관업도 언젠가 해 볼 생각’이라 했을 때 즉각 맞장구를 쳤다. ‘다른 물건은 줘도 책만은 쉽사리 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맡아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씨의 새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책이 있는 공간’이다. 여수 여자만 인근에 살던 그는 최근 배로 한 시간 걸리는 섬에 화실을 겸한 공간 ‘미역창고’(美力創考)를 짓고 그곳에 서울 서재의 책을 가져다 놓았다. ‘도교대생들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 등으로 유명한 일본 논픽션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은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다. 건물 외벽에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도쿄 주택가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의 빌딩엔 20만 권의 장서가 쌓여 있다.

이들 두 사람처럼 ‘책과 함께하는 근사한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로망일 뿐이다. 그럴 땐 ‘책 나눔’에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지?

시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가게’ 용봉점 헌책방이 벌써 10주년을 맞았다. 책뿐 아니라, 사회적기업 제품 등을 판매하는 책방의 구매 고객은 9만2100명에 이르렀고, 그동안 56만 6400여 점이 판매됐다. 소소한 마음이 모여 큰 기적을 낳은 것이다.

‘이목구심서’ 역시 향토사와 관련된 각종 자료집 등을 기부받는다고 한다. 우리집 책장에 잠들어 있는 책이, 혹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