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수록’을 지은 유박(1730~1787)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생 화훼를 가꾸며 지냈다. 말년에는 살림살이를 탕진할 만큼 화훼수집에 몰두했다고 한다. 사시사철 몇십 년을 꽃과 함께하다 보니 그의 거처인 ‘백화암’(百花菴)은 당대 여러 문인의 글에 등장하기도 한다. ‘백화암’은 사시사철 온갖 꽃이 만발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세하는 것은 포기했어도 원예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았던 유박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원예 취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망라해 ‘화암수록’을 썼다. ‘화암수록’은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함께 조선 시대 2대 원예전문서로 꼽힌다.

유박은 사람들이 외래종이나 조정에 바치는 품종만을 귀하게 여긴 당시의 화훼문화의 병폐를 지적했다. 또한 당대 이미 고전으로 자리 잡은 ‘양화소록’이 주로 중국의 사례를 많이 참조한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조선에서 원예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으나 여전히 화훼의 지위와 체계는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화훼의 등급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화훼를 다섯 종씩 9등급으로 나누고 꽃을 부르는 각종 명칭과 키우는 법, 꽃말, 열매의 생김새, 맛과 향, 보관법 등 화훼의 특성을 꼼꼼히 정리했다. 그중 스물두 가지 꽃에 대해서는 따로 4~8자의 간략한 평을 달았다. 지금은 흔히 쓰이는 방식이지만 유박은 처음으로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했다. 여기에 원예를 소재로 한 유일한 연작시조 ‘화암구곡’, ‘매농곡’ 그리고 한글로 적은 ‘촌구’ 등을 비롯해 꽃을 소재로 한 다양한 글을 함께 수록했다. ‘한시미학산책’, ‘다산의 재발견’ 등을 펴낸 정 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와 김영은·손균익씨 등이 역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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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