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이다. 역사가 공식적 대화라면 기억은 친밀한 대화이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기억 전쟁’이라는 책에서 희생자의 경험과 목소리, 다시 말해 기억과 증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증언은 불완전하고 더러 부정확한 탓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나 일본 우익들에게 줄곧 무시돼 왔다. 그럼에도 희생자들의 증언은 문서와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을 지닌다는 면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해외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미국의 글렌데일이라는 중소 도시다. 우리와 특별한 연고가 없는 그곳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이 건립된 데에는 까닭이 있다. 해외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있는 지역이 글렌데일인데, 아르메니아인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학살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이 많은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이종명·김순례·김진태 의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은 물론 학살의 참상을 조롱하는 반인륜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5·18 망언’을 되풀이하는 지만원 씨와 극우 인사들에게 ‘증거’나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론의 호도를 통해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정치적 이익을 꾀할 뿐이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독일의 사례 등을 토대로 우리도 입법화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명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이라고 불리는 형법 제130조는 나치 지배하에 벌어진 반인도적 범죄를 부인하거나 피해자 존엄을 침해하는 언행도 범죄로 규정한다. 고소 없이도 기소가 가능한 것은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 데서 나아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내에는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세력의 DNA가 흐른다. 그들이 누리는 혜택은 일정 부분 ‘피 묻은 과거’에서 비롯됐다.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전이된 망언과 왜곡을 끊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희생자들의 기억과 증언이 절실하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