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1922~2009년 2월16일·사진)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아 고인과 광주의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자 5·18항쟁 때 광주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전두환에 맞선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김 추기경과 광주의 인연을 소개하는 기념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14일 5·18기록관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1980년 5월19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 가톨릭센터(현 5·18기록관) 6층 집무실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윤공희 대주교는 급히 상경해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광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 추기경은 다음날 서울 궁정동 안가로 전두환을 찾아간다. 당시 전씨가 실권자라는 사실은 일부만 알고 있었던 상황으로, 김 추기경은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김 추기경은 전두환에게 “유혈사태를 지속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전화기가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국방부가 전씨에게 광주 상황을 보고하기 위한 전화였다. 김 추기경은 상황이 급박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전씨는 1시간 동안 전화기만 붙잡고 있어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급기야 전씨는 벙커로 가야 한다며 방을 나가버리며 면담은 지속되지 않았다. 일부 5·18연구자들은 김 추기경의 방문에 부담감을 느낀 전씨가 일부러 부하들에게 전화를 계속 걸라고 지시해 면담을 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추기경은 생전 인터뷰에서 “전씨가 ‘광주에서 내란이 벌어졌다’며 갑자기 나가버리자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해야할 지 답답함을 느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고 회상했다.

1980년 5월21일 김 추기경은 교황청 대사를 통해 글라이스틴 미국대사를 만나 광주 상황 해결을 촉구했고,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만났다. 이 사령관은 김 추기경에게 “시위대가 북쪽으로 오지 않는 한 괜찮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미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있었지만 이 사령관은 김 추기경을 속인 것이다.

이후 광주의 참상을 전해들은 김 추기경은 군종 신부를 통해 윤공희 대주교에게 광주 상황을 우려하는 서신과 당시로서는 큰돈인 현금 1000만원을 부쳤다. 이 돈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맡겨져 부상자 치료와 구속자 영치금 등으로 쓰였다.

1981년 1월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 12명에 대해 사형 등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을 지켜보던 피고인의 가족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뿌렸고 곧 경찰이 들이닥쳤다. 가족들은 지하묘지로 피신했고, 다음날 김 추기경은 가족들의 손을 잡고 주교관으로 이끌었다. 이후 가족들은 추기경의 보호 아래 농성에 들어갔고, 이 사이 윤공희 대주교는 전두환을 만나 “더 이상 피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해 피고인들은 특별사면을 받게 된다.

지난 1984년 5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광주 금남로를 방문한 배경도 김 추기경의 부탁이 있었던 알려졌다.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빈 자격으로 광주를 방문한 교황은 청와대 경호실에 금남로를 방문하겠다고 통보했다. 교황에게 광주를 보여주기 싫었던 전두환 정권은 저격 위험을 이유로 만류했지만 교황은 로마 교황청에서 방탄차를 공수, 금남로 퍼레이드를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김 추기경의 메시지를 받은 교황이 금남로에서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02년 김 추기경을 인터뷰한 김양래 5·18재단 이사는 “당시 김 추기경님은 5·18에 대해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시면서 평생 동안 가장 마음 아팠던 일로 5·18을 꼽으셨다”며 “5·18 이후에도 서울에서 시위를 한 5월 가족들을 보살피는 등 광주에 애정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오는 16일부터 김 추기경과 광주와의 인연을 소개하는 사진전을 열 예정이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