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이니 벌써 74년 전의 일이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이 출간된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인 칼 포퍼는 아돌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고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전체주의로 대표되는 ‘닫힌 사회’와 혁명, 그리고 완벽한 사회를 주장한 철학자들을 비판해 주목받았다.

포퍼는 ‘열린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그 특징은 점진적인 개선을 믿고, 토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방향을 설정하며, 개개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비판에 귀를 기울인다는 믿음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다소 이상적일 수 있지만, 지배적인 의견에 대해 반대의 자유를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재자가 전횡을 일삼는 전체주의와 지금 우리의 현재를 비교한다는 것은 지나치겠지만, 그것과 아주 유사한 상황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포퍼가 말하는 ‘닫힌 사회’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양극은 더 멀어지고, 주장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소통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난 29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불참을 선언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재벌 개혁, 만연한 불로 소득, 국민연금 개편, 최저 임금, 노동 시간 유연화, 광주형 일자리 등을 다뤄야 하는 경사노위의 향후 논의 자체도 무력화 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 정치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마저도 이들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대화 자체를 거부한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계의 ‘닫힌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듯하다.

칼 포퍼는 “우리는 자유와 함께 진보가 의존하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들을 지키고 강화함으로써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좀 더 열린 자세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협의를 통해 대다수가 공감할 만한 방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인가.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