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충효당. 유성룡의 종택으로 사후에 후손과 문하생들이 유성룡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태종의 남자로서 하륜이 보여준 대표적인 능력은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전해 온다. 태종이 왕이 된 후, 아들에게 불만을 가진 태조는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갔고, 태종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번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태조는 오히려 이들을 죽이는 것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함흥차사’ 고사의 유래다. 그런데 하륜은 태조의 분노가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을 의식하여 장막의 기둥을 크게 만들자고 했고, 놀랍게도 태조가 태종을 향해 쏜 화살은 하륜이 미리 대비한 나무 기둥에 박혔다. 태종을 구한 하륜의 기지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본문 중에서)



‘참모’라는 말에서는 정치적인 냄새가 난다. 훌륭한 지도자 곁에는 늘 그에 못잖은 참모가 있었다. 고대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참모의 역할은 막중하다.

최근 노영민 전 주중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문재인의 남자’로 불리는 그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2012년 대선 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고 지난 대선 때는 선대본부 조직본부장을 역임했다. 자리가 말해주듯 그가 핵심 참모임에는 분명하다.

역사를 보건대, 조선시대 왕들은 모두 절대적인 권력을 누린 것은 아니다. 그보다 참모들을 적절히 활용해 국정을 운영해왔다. ‘왕’과 함께 ‘참모’는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프리즘 같은 것이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에서 조선을 이끌었던 신하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가 펴낸 ‘참모로 산다는 것’은 역사 속 진정한 참모를 통해 현재의 답을 찾는다. 책에는 건국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정도전부터 실록에 무수히 등장하는 송시열에 이르기까지 40명의 참모가 소개된다.

먼저 ‘새 왕조를 설계’한 참모들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건국의 최대 공로자였지만 신권 중심주의를 주장하다 제거되는 정도전, 이방원을 보위에 앉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하륜, 세종과 함께 태평의 시대를 이끌었던 성삼문, 그리고 성삼문과는 엇갈린 행보로 변절자로 남았지만 유능한 관료였던 신숙주 등이 소개된다. 저자는 세종이 성군이 된 것은 개인적인 능력도 뛰어났지만 참모형 인재를 적절히 발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에서는 조선 최고 문장가이자 관중과 포숙의 관계였던 서거정과 강희맹을 참모이자 문장가 관점에서 살폈다. 저자는 성종은 서거정, 성현, 김종직, 김일손 등에게 고르게 역할을 맡겨 15세기 제도와 문물 정비를 완성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권력을 통해 수양대군의 참모가 되고 세조의 신임 속에 승승장구했던 한명회의 권력투쟁과 쓸쓸한 말년도 들여다본다.

왕의 판단을 흐리게 했던 참모도 있었다.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에서는 연산군의 마음을 흔든 장녹수, 폭정에 기름을 부은 간신 임사홍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반면 중종의 절대적 총애를 받다가 ‘주초지왕’(走肖之王·조씨가 왕이 된다)의 역모 혐의를 받고 죽음에 이른 조광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 양대산맥으로 활약한 조식도 다뤘다.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에서는 ‘십만양병설’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선조시대 최고 참모 이이를 살핀다. 더불어 선조와 애증의 관계였던 가사문학의 뛰어난 문장가 정철, 7년에 걸친 임란 과정을 ‘징비록’으로 남긴 유성룡을 통해 난세의 참모들의 모습을 고찰한다.

‘광해군의 그림자 속 참모들’도 흥미롭다. 당리당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을 유지했던 뛰어난 외교 참모 이덕형, 급진적 개혁을 주창하다 죽임을 당한 비운의 천재 허균, 상궁의 신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김개시도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숙종시대 정치 공작의 달린 김석주, 정치와 사상의 중심이었지만 숙종에게 사약을 받은 송시열, 개혁정치를 추구했던 정조의 참모였던 실학자 정약용도 다룬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왕조 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반복이라는 역사의 속성 앞에 조선시대 명참모들이 갖추었던 덕목들은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목표 설정의 적합성, 적절한 정책 추진, 여론과 언론 존중, 도덕성과 청렴성,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 등이다.”

<매일경제신문사·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문학박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