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음식의 시대다. TV에서는 다양한 음식 방송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개인미디어에서도 ‘먹방’과 ‘쿡방’이 대세다. ‘맛집 탐방’은 유명 인사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한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시대적 변화에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려는 젊은 요리사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더해질수록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점차 우리의 고유의 정체성이 한식에서 사라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식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정체성이 불분명한 한식을 ‘한식’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조선 왕실의 음식 문화를 조명한 책이 발간됐다. 책은 궁인들이 기록한 일종의 식단표인 ‘음식발기’(飮食發記)를 토대로 5개의 왕실 상차림을 되살렸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가 펴낸 ‘조선 왕실의 밥상’은 전통 한식에 관한 보고서다. 지난 30여 년간 음식 문화를 공부해온 저자는 전통 조리법을 배우면서 한식 문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저자가 한식을 주제로 삼은 것은 한식이 문화역사라는 인식에서 연유한다. 종가 음식과 사찰 음식, 향토 음식, 왕실 음식 등 이어가야 할 한식의 종류도 많고 깊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음식발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조선 왕실에서 궁중의례에 사용되는 물품, 수량, 인물 등을 기록한 고문서다. 넓게는 진찬이나 진연 혹은 제사, 생신, 길례, 진지, 다례 등에 차리는 음식 목록이나 참석자의 직책과 그들에게 내린 음식상의 종류 등을 적은 문건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700~800여 건 남아 있다. 그 중 음식발기가 200여 건에 이른다.

저자는 조선 왕실 음식의 철학은 ‘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고 설명한다. 한식의 우수성이나 건강성의 논리에는 이 같은 음식 철학이 담겨 있다. 특히 한류 문화를 견인했던 드라마 ‘대장금’은 한국 궁증 음식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무엇보다 ‘약식동원’의 사상을 잘 구현했다.

약식동원은 왕실 음식의 식재료와 조리법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의학과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세조는 ‘식치’(食治)를 강조했다. 말 그대로 식치란 음식으로 몸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세조는 “입에 달면 기운이 편해지고 먹기에 거북하면 괴로운 것이다. 음식에도 차고 더운 것이 있어서 잘 가려 조리해야 하며 지나치게 먹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자는 식의(食醫)가 아니다”고 했다.

현재 왕의 수라상은 12첩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근거를 찾기 어렵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따르면 수라상은 7기로 차려졌다. ‘첩’은 반상의 밥, 국, 조치(찌개), 김치, 간장 등을 제외한 반찬 가짓수를 말한다.

12첩 반상의 등장은 왕실 음식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당시 통용되던 반가의 9첩 반상과 차별되는 왕실 음식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차림으로 통용됐을 거라는 얘기다.

잔치 음식의 특징 중 하나는 쌓아서 차린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차림을 ‘고임’ 혹은 ‘고배 상차림’이라고 한다.

현재의 돌상이나 회갑상, 혼례 등의 축하 상차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고배 상차림은 고구려 고분벽화 중 무용총의 ‘접객도’에도 등장한다.

왕실의 점심상차림인 주다례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주(晝)는 낮이라는 한자와 연관이 있다. 저자는 “수라가 없고 목면으로 차려진 면상차림이다”며 “점심은 ‘낮것’이라 하여 왕실의 낮것상은 면상차림이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조선 왕실에서 차리는 음식상은 상을 받는 입장에서 두 가지로 나뉜다. 왕과 왕족에게 올리는 진어상(進御床), 왕실에서 내리는 사찬상(賜饌床)이 그것이다. 문헌에는 왕실에서는 진어상 못지 않게 잔시 시에 손님에게 접대하는 사찬상을 중시했다고 나온다.

저자는 “조선 왕실의 음식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왕실 음식 문화와 비교해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며 “발기에 나오는 음식명으로 상차림을 제시하고 각 음식의 조리법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푸른역사·4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문학박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