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콘서트를 여는 최준호(왼쪽부터), 오정묵, 박태홍, 박문옥씨.

“5·18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80년 겨울, 참담함과 쓸쓸함을 노래했죠. 청년 시절 제 목소리가 그리울 때마다 꺼내 들으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가수였던 오정묵(62) 전 광주MBC PD가 부른 민중가요 카세트 테이프가 38년 만에 디지털 음원으로 복원됐다. 복원 작업은 오씨의 오랜 친구이자 가수 겸 음반제작자로 활동하는 박문옥씨가 맡았다.

이번에 복원된 음반은 오는 12일 오후 7시 30분 광주시 남구 구동 빛고을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소리모아’의 공연에서 공개된다. 오씨와 함께 세 번째 ‘더힐링 콘서트’를 여는 ‘소리모아’ 멤버 박문옥, 박태홍, 최준호씨는 이날 복원 앨범 대표곡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의 코러스로 나서 뒷받침할 예정이다. 지난 9일 밤 광주시 남구 주월동 ‘소리모아 스튜디오’에서 공연 연습이 한창인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석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모여 연습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에서 영상제작사를 운영하는 오정묵씨와 광주에서 활동하는 소리모아 멤버들은 바쁜 일정에도 전남대에서 맺어진 42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소리모아’는 1977년 1회 MBC대학가요제에서 창작곡 ‘저녁 무렵’으로 동상을 받으면서 광주·전남 창작포크송의 시작을 알렸다.

테이프 녹음 당시 오씨는 스물다섯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기타 한 대와 카세트 녹음기 하나로 밤을 새워 29곡의 민중가요를 홀로 부르고 녹음했다. 테이프에는 ‘이세상 어딘가에’, ‘금관의 예수’, ‘타박네’, ‘친구’, ‘호남 농민가’, ‘(독립) 출정가’ 등 5·18 직후 불렸던 여러 장르의 저항노래들이 담겼다.

“처음에는 혼자 들을 심산으로 만든 테이프였는데 어느 날 친구 은우근(현 광주대 교수)이 500개 정도 복사본을 만들어 전국에 퍼뜨렸어요. 테이프를 팔고 남은 돈은 민주화 동지들의 영치금과 도피자금으로 요긴하게 썼어요. 시간이 흐르니 테이프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지냈죠.”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테이프는 지난 가을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소리모아 후원회원인 최연석 목사가 오씨에게 그동안 간직해온 테이프를 건넨 것이다. 테이프를 들은 박문옥씨는 ‘노래운동의 역사’의 한 편을 장식할 만한 귀중한 자료로 남기기로 결심했다.

“오정묵의 노래에는 80년 오월 당시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자유의 갈망이 호흡마다 느껴져요. 녹음기 누르는 소리, 테이프 길이가 다 돼 노래 중간에 ‘툭’ 끊기는 소리마저 가슴이 뭉클해서 지울 수가 없었어요. 38년 묵은 카세트 음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기에 최대한 원본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테이프는 소설가 황석영에게도 들려졌다. 5·18민중항쟁 2년 뒤인 1982년 4월 북구 운암동에 살던 황석영의 집에 김종률, 전용호, 오정묵 등 지역 문화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5·18 2주기 행사를 준비하던 이들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다룬 노래극 ‘넋풀이’를 만들었다. 이 ‘넋풀이’에 수록된 7곡 중 대미를 장식한 곡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오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테이프 녹음을 한 주인공으로 기록됐다.

38년 만에 듣는 자신의 음성에 대해 “돌아오지 않는 청춘”이라 이름 붙였다.

“앨범 표지에 실린 제 얼굴 속 눈빛 살아있지 않나요? 혈기 넘치던 때라 모든 노래를 ‘전의에 불타’ 불렀어요. ‘잘가오’나 ‘내일이 오면’은 이별에 관한 노래인데도 힘이 잔뜩 들어갔죠. 이제는 40년 지기 소리모아와 함께 잘 익은 하모니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했던 이들이 서른여덟 번의 계절이 바뀌어 부르는 노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소리모아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1년에 한번씩 여는 이번 공연은 소리모아 앨범 수록곡, 7080 팝송 등으로 꾸며진다. 무대의 하이라이트는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위 윌 락 유’가 장식한다. “누가 프레디 머큐리를 맡냐”는 질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멤버와 관객 모두가 프레디가 될 것”이라 한 목소리를 냈다.

비매품인 복원 음반은 이날 공연에 참석한 관객에게 무료로 배부된다. 전석 2만5000원. 문의 010-6548-2191.

/글·사진=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